부활 제6주일 가해 -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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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일 가해 -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지난 주일,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는 필립보의 요청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 하고 이르시는 예수님 말씀을 들었다. 하느님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의 말씀과 성체 안에, 그 사랑 안에서 만나 뵐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러기에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감으로써 진리와 생명을 누린다는 말씀을 묵상하였다.
예수님을 볼 수 없다면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뵐 수도 없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어떻게 예수님을 볼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라고 위로하시며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라고 약속하신다. 여기서 "보호자 παράκλητος "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불려서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이란 의미의 재판 용어였다. 재판 때 피고인은 죄가 있든 없든 법정에 서면 두렵기 마련이다. 그 상황에서 곁에 서서 어깨에 손을 얹고 든든히 지켜주는 존경 받는 원로, 변호인, 후견인, 협조자 등을 "paraklétos"라고 불렀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떠나신 후 세상에 남은 제자들에게 외롭지 않게 "보호자 paraklétos"이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사는 것이 외롭다고들 한다. 그래서 이를 이겨보려고 애를 쓴다. 외로움 치료제라고 하는 핸드폰에 매달려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하며 외로움을 이겨보려 한다. 컴퓨터나 텔레비전 앞에 마냥 앉아있는 행동 등은 모두 외로움을 이기려는 무의식적 행동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정 호승 시인은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라"(수선화 중)라고 말할까? 21세기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의 3대 고민으로 건강, 경제력, 그리고 외로움을 든다. 이 중 건강과 경제력은 본인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지만 외로움은 극복하기 힘들다고 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 봉사한 마더 테레사는 "가난 중의 가난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다고 느낄 때 오는 고독감이다."라고 하였다. 자신의 삶을 아무도 몰라주고 어디도 의지할 곳 없을 때, 든든한 보호자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은 두렵고 외로운 우리의 어깨에 손을 얹고 든든히 지켜주시는 파라클레토스다.
보호자 성령, 파라클레토스의 손길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예수님은 성령을 약속하시며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신다."라고 이르신다. 주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즉 가까이, 혹은 옆에) 계심에서 더 나아가 우리 "안에" 계시겠다는 선언이다. 그리하여 "그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이신다. 보호자이신 성령을 만나는 곳은 바로 내 안, 내 마음의 내밀한 곳, 내 영혼이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우리 어깨에 손을 얹고 우리 안에 계신 paraklétos 성령은 어떤 역할을 할까? 성경에서 성령의 역할에 관해 C. M. Martini는 이렇게 설명한다. 먼저 성령은 세상을 살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신다. 현대인에게 시계보다 더 필요한 것이 나침반이라고 한다. 시간에 맞춰 바쁘게 일하는 것 이상으로 어디로 가는지 삶의 방향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성령은 바로 삶의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신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일러주는 나침반의 방향은 곧 예수님이 살아가신 방향이다.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셨다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으로 아버지께 돌아가셨듯, 성령은 우리 안에서 일상의 모든 일이 하느님으로부터 출발하여 아버지의 뜻을 실행한 후 하느님께 돌아가도록 방향을 잡아주신다. 성령은 그렇게 우리에게 "길"이신 예수님을 따를 방향을 제시하시어 "진리'와 "생명"으로 이끄신다.
성령은 또한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시키는 힘이시다.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가 하나이셨듯, 우리를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게 하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더 나아가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로 일치시키고, 믿는 이들 서로를 한 가족으로 일치시키고 사랑으로 묶어주는 힘이다. 이러한 성령은 예수님 안에서 그러하셨듯 끊임없이 샘솟는 생명수로 새로움과 창조의 힘이 되시어, 가장 복잡한 문제도 가장 단순하게 해결하는 창조적 지혜를 우리에게 주신다.
이렇듯 성령은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의 "보호자"이시다. 세상에서 신앙인은 외로움도 없고 시련도 없이 살아가는 은총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외로움 중에 우리를 위로하시고, 갈 길 모르는 방황 속에 나침반이 되시며, 두려움에 떨 때 붙들어 주시는 보호자 성령을 받아서, 시련 중에 더욱 순수하게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초대받은 사람이다.
그러기에 성령을 약속하시며 주님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요한 16, 7-8)고 이르신다.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주님, 지상 생활을 하실 때는 우리와 함께 머무르셨지만, 이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하신다.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