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원가입  |   로그인  |   오시는 길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말씀의 숲
영성의 향기 말씀의 향기 수도원 풍경 세상.교회의 풍경 기도자리
말씀의 향기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해 - 하나 됨의 신비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5-06-19 14:44   조회: 164회

본문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해 - 하나 됨의 신비

 

성자 예수님이 성부께 오르시어(지지난 주일) 성령을 보내신 성령강림(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낸다. 성부, 성자, 성령이 '위격으로는 셋이요 본체로는 하나인 삼위일체' 신비는 이해가 쉽지 않아 많은 전문가들이 비유나 사변을 통해 철학이나 논리학 등 여러 방식으로 풀이하였다. 그 가운데 성경에 드러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그 신비를 헤아려보자.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체험하며, 이 한계를 넘어설 길을 찾아왔다. 하느님이 계시하신 길은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는 존재에 대한 신앙이었다. 첫 독서 잠언은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을 전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첫 작품으로 지혜를 만드시고 이어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창조주 하느님을 주님으로 섬기게 되었다. 자신들을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도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신앙은 희미해졌다. 착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을 보며, 지혜롭고 정의로운 주님에 대한 의심이 들었고, 전지전능한 구원자인 하느님은 언제 세상에 오실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당시에 하느님을 글자대로 율법을 지켜 섬겨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였는데, 예수님은 법보다도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 의로운 이만 구원받는다고 믿던 이들에게 당신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며 자비를 전하셨다. 하느님은 성전에만 계시다고 믿던 사람들에게 당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이르셨다.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를 죽은 다음에 가는 곳으로,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으로 간주했는데,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왔다고 선포하셨다. 즉 가난한 이들, 슬퍼하는 이들 온유한 이들,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이미 하느님 나라가 왔다고 선언하셨다. 그 나라는 힘으로 통치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의 다스림이요, 싸워서 쟁취하는 얻는 전리품이 아니라 은총과 사랑의 선물이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이를 말로만 선포하지 않으시고 행동으로 실천하셨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중풍병자를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고 죄인들과 어울리며 굶주린 이들에게 빵을 주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자신들을 구원해 줄 분으로 여겼다. 식민지 통치와 온갖 불의에서 해방시켜 하느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나라를, 옛적에 다윗이 이룩했던 왕국을 다시 세울 그리스도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기대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하느님에 관해 자신들만 알고 자신들만 옳다고 생각한 종교 지도자들과, 하느님 나라가 세워지면 권력을 빼앗길 것이라고 지레 겁먹은 정치인들이 야합하여 예수님을 처형하였다. 모든 기대가 사라진 이 상황에 극적인 반전이 이뤄졌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들이 나날이 늘어갔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변화였다. 그분을 모른다며 숨고 도망 다니던 제자들이 돌변하여 박해든 순교든 기쁘게 받아들이며 두려움 없이 예수님을 증언하였다. 그들은 병자들과 약한 이들을 돌보았고 남자든 여자든, 부자든 가난한 이든 모두 차별 없이 서로 존중하며 기쁨에 넘친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들의 공동체는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처럼 변화되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군데 그분을 믿으며 삶이 달라질까?' 하고 묻게 되었다. 이들은 성서 말씀에서 그 답을 찾았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셨구나. 예수님 안에 세상을 만드시고 구원하신 하느님이 계셨구나. 예수님과 하느님은 서로가 서로 안에 계시니 한 분이구나. 하느님과 예수님이 하나인 까닭은 예수님의 영과 하느님의 영이 하나이기 때문이구나. 두 분을 하나로 엮어주는 영이 성령으로, 태초에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숨이자, 부활하신 예수님이 숨을 불어넣으시며 받으라시던 성령이구나. 그러니까 아버지 성부와 아들 성자, 그 두 분의 영이신 성령은 하나이구나. 이 진리를 한 단어로 짧게 표현한 말이 '삼위일체'였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삶이 변화된 원인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성령께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게 하고, 하느님과도 하나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또 다른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이란 뜻으로 크리스천이라고 불렸다.

 

삼위일체 신비는 난해한 사변적 이론 이전에 그를 믿고 고백하는 이들을 그 신비에 참여시키는 신비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령,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는 진리 안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그 진리를 알려주신다는 약속이다. 삼위일체의 진리, 곧 생명을 창조하시는 아버지의 전능과, 인간을 구원하시는 아들의 사랑과, 이 모두를 하나로 묶어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일치는 바로 믿는 이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즉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만의 하나 됨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이 이루시는 일치 안에 우리가 묶여지는 신비였다. 그래서 우리도 성부처럼 세상에서 창조적 삶을 살고, 성자처럼 사랑으로 서로를 구원하며, 성령처럼 서로 하나가 되어 거룩해지는 길이 열린 놀라운 신비였다. 이처럼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가 하나로 결합되는 신비다.

 

삼위가 일체인 신비는 하나 됨의 신비로 구체화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과 내가 하나가 될 때, 겉의 나와 속의 내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된다. 겉보기에 희로애락을 겪으며 생로병사를 겪는 나의 삶이 사실은 참으로 존귀한 하느님 작품임을 체험한다. 더 나아가 이웃과 내가 하나가 된다. 더불어 사는 세상 속에서 때로 미워하고 때로 야속하고 때로 그리운 이웃이나 가족과 내가 하나가 된다. 더 나아가 때로 아름답고 때로 놀랍고 때로 두려운 자연과 환경이 그것을 느끼는 나와 하나가 되어 우주의 신비가 밝혀진다. 드디어 한없이 초라해 보이던 내가 영원하신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비에 참여하여 함께 춤을 추게 된다(리치드 로어, 하느님과 함께 춤을).

 

신앙인은 하루에도 꽤 여러 번 성호경과 영광송을 바친다. 기도 전후로, 식사 전후로, 언제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 우리도 하나로 합체됨을 되새기자.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 안에서 하느님과 내가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자. 그래서 우리 삶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영광을 드리자.

 

[출처] 말씀에

 

해뜨는 마을 l 영보자애원 l 영보 정신요양원 l 천안노인종합복지관
교황청 l 바티칸 뉴스 lCBCK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l 한국 천주교 주소록 l 수원교구
우. 13827 경기 과천시 문원청계길 56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56 MunwonCheonggyegill Gwachon-si Gyeonggi-do TEL : 02-502-3166   FAX : 02-502-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