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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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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일 가해 -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3-07-11 09:59   조회: 2,749회

본문


연중 제14주일 가해 -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오늘 복음은 아들 예수님이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로 시작한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어로 "철부지"는 '미성년자, 미숙한 자'의 의미인데, 여기서는"나이가 어린 사람이 아니라, 교육을 받지 못한 이, 지혜를 갖추지 못한 이를 가리킨다. 마태오에게 철부지들은 일차적으로 제자들이다."(주석성경)

얼핏 보기에 단순한 감사 기도인 이 말씀은 사람들이 가졌던 하느님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을 무너뜨리는 말씀이었다. 당시에 유다교의 주도 세력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의인이어야 하며, 철부지처럼 단순하고 무식한 죄인들은 구제받을 길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바리사이로 대표되는 이들 자칭 의인들은 하느님을 무자비한 심판관으로, 율법은 냉혹한 형법전서로 만들어 버렸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단일 민족 이스라엘은 이제 의인과 죄인이 갈라진 사회가 되고, 그것도 거의가 죄인이며 소수의 의인들은 죄인을 벌받은 사람으로 무시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신 예수님은 당신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고 말씀하시며, 죄인의 심판이 아닌 구원을 선포하셨다. 오늘 언급하신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란 율법이란 굴레에 묶여서 단순하고 무식한 죄인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을 전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예수님은 물고기를 잡던 어부 등 가난하고 단순한 사람들, 세리와 창녀 등 죄인들과 어울리며 나병환자, 중풍병자, 마귀 들린 이 등에게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을 전하셨다.

어린이처럼 단순한 이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였지만, 지혜롭다는 의인들은 그런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들이 믿던 하느님 즉, 의인만 사랑하고 죄인은 단죄하는 두렵고 냉혹한 하느님과는 너무 다른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자비를 전하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위험시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이르신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아들 안에 아버지가 계시기에, 아버지를 아는 유일한 존재인 아들 예수, 이 아들과 함께 하는 이들이 체험하는 자비와 사랑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진짜 모습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한 "철부지"들에게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여기서 ‘멍에’란 가축의 어깨에 씌워 쟁기를 뒤에 달아 끌기 위해 나무로 구부러지게 만든 기구를 말한다. 멍에는 부정적 의미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긍정적 의미로 동물이나 자신의 몸과 짐 사이에 놓여 짐을 편하고 가볍게 하는 도구다. 어떤 상황이든 ‘멍에’는 짐 아래 놓여 짐을 함께 진다.

살아있는 한 인생의 짐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 짐과 나 사이에 예수님이란 '멍에'를 멘다면 짐은 그대로 있지만 짐을 진 상황이 달라진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은 힘센 장사가 아니라, 온유(어원은 "땅") 하고 겸손하신 분이시고, 우리와 같이 약한 운명을 지니고, 고생하고 허덕이는 이들 가운데 계신 분이시다.

그래서 "나에게서 배워라."라고 말씀을 이어가신다. 예수님에게 배우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멍에로 매고, 예수님을 통하여 내 짐과 세상을 보고, 예수님과 함께 씩씩하게 짐을 지고 걸어가며, 언제나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내 등 위의 짐은 예수님 멍에 위에 놓이면 예수님의 짐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말씀을 마무리하신다.

우리가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의 멍에를 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있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바로 당신 아들로 알아보실 것이다.

어느 탄광 마을에 한 소년이 있었다. 광부인 아버지가 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자 아들은 갱 입구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을 지키던 소장 아저씨가 “얘야, 누구를 기다리니?” 하고 묻자 소년은 “아버지요” 하고 대답했다. 그 사람이 다시 “광부들이 갱에서 나올 때는 석탄가루로 온몸이 검게 되어 네 아버지를 알아볼 수 없을 텐데…” 하였더니, 소년은 즉시 “네. 하지만 제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아버지는 저를 금방 알아보실 거예요”라고 대답하더란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우리 같은 철부지를 알아보시는 우리의 진짜 아버지다. 철부지 같은 우리이지만 아드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믿으면 이를 기뻐하시며 당신의 선한 뜻이 이루어졌음을 흐뭇해하시는 분이다, 갱도에서 나온 아버지가 아들을 알아보듯, 예수님의 멍에를 맨 우리를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로 바로 알아보실 것이다. 철부지들의 작은 기다림에 기뻐 달려오셔서 꼭 안아주실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두고 사도 바오로는 둘째 독서에서 이렇게 이르신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출처]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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