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화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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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화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디다케나 예로니모 등 교부들의 해석에 따르면
'거룩한 것'이나 '진주'는 복음, 혹은 성체를 의미한다.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살과 피인 성체를 소중하게 대하라는 당부로 마음에 새긴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기원후 3세기 로마 황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가 황금으로 써서 걸어두었다는, 이른바 '황금률'이다.
누구나 수긍하는 보편적 진리이기에 황금이기도 하지만, 쉽게 찾기 힘들어 황금이기도 하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황금인 줄 알았는데 변색되는 경우 얼마나 실망스럽던가?
변하지 않는 진정한 황금은 "진리"이신 예수님의 삶이 아니었던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수난과 죽음을 통과하신 예수님 자신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신 분 아니시던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따르는 길은 주님이 가신 길,
주님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는 길.
그 길이 좁은 문으로 가는 길임을 일러 주신다.
* * *
"예수님을 보고 지나치거나 외면하기는 쉽지만 따르기는 어렵기에 그 길은 좁은 길이다.
따르겠다고 나섰다가 길을 찾지 못하고 포기하기는 쉽지만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란 참으로 힘들다. ....
길을 가는 여정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알 수 없기에 좁은 길이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그분의 의지를 따름을 증언하는 길,
원수까지 포함하여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길은 참으로 좁은 길이다.
이 땅에서 그분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따르기에는 더욱 좁은 길이다.
타인의 약함과 한계와 불의를 마주하며 심판하지 않고 참아주는 것은 좁은 길이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길을 내가 가야 한다는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을 살필 때,
자신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불신과 두려움을 마주할 때 정말 좁은 길, 아니 불가능한 길이다.
앞서가시는 당신이 아니라 나의 허약함을 먼저 볼 때 이미 위험에 빠져 발밑이 흔들리는 길이다.
그러나 내 앞에서 나를 한 걸음씩 이끄시며 앞서가시는 예수님을 볼 때
한 걸음씩 따를 수 있는 좁은 길이고, 그렇게 당신을 볼 때에만 끝내 따를 수 있는 좁은 길이다.
예수님 자신이 "길"이시다.
당신 자신이 고난의 길이시자 좁은 문이시다.
그러기에 예수님, 당신 만을 찾습니다." (D. 본 회퍼)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