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일 가해 - 밭에 숨겨진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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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일 가해 - 밭에 숨겨진 보물
예수님은 지난주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도 비유로 하늘나라의 신비를 일러주신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아, 이를 발견한 사람은 잘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는 비유다. 실제로 예수님 시대에 밭에 숨겨진 보물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집트와 근동의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팔레스티나에서는 잦은 전쟁이 이어졌고, 그럴 때 보물을 항아리 등에 담아 밭에 묻어두고 피신하였기 때문이다. 이어진 비유는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아, 이를 발견하면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산다는 말씀이다. 이 이야기 역시 현실성이 높은데, 양식 진주가 없던 당시에 자연산 진품 진주는 매우 귀하고 값도 비쌌다. 클레오파트라의 진주 목걸이는 환산하면 억대였다고 한다(J. Jeremias, 예수의 비유).
매우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이것을 얻기 위하여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한다는 비유다. 다른 것을 포기하는 이유는 보물이나 진주가 여타의 모든 것보다 가치 있고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 비유의 결정적인 말은 '기뻐하며'라는 단어"라고 요아킴 예레미아스는 풀이한다(예수의 비유, 194-195). 그 기쁨이 보물을 발견한 이를 사로잡아 마음을 압도하기에 그 감격을 감출 수 없다. 보물을 발견하면 여타의 것은 아무리 비싼 것도 비싸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보물 이외의 모든 것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하늘나라야 말로 참으로 기쁜 것이기에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게 된다는 비유 말씀이다.
교부들은 보물이 숨겨진 밭은 성경을,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이 비유를 풀이하였다. 복음과 그 속에서 발견하는 예수님보다 더 값지고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복음의 기쁨'에 사로잡히면 여타의 모든 것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하늘나라의 가치를 알면서도 그것을 붙잡기 위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또 그것을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하찮은 일들을 포기하기를 두려워하면 하늘나라를 놓치고 '복음의 기쁨'도 사라진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 10,39)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다른 차원에서 보물이나 진주는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의 가장 깊은 주제는 예수님 자신의 신비였다." (베네딕토 16세) 즉, 하늘나라의 비유는 다름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체험하신 신비다. 예수님이 체험한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 자신에 대한 고백이 비유에 담겨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이 계신 곳이자 다스리시는 곳이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특별히 당신의 모상으로 만드신 인간 안에 계신다. 하느님은 인간 한 명 한 명을 밭에서 발견한 "보물"처럼, "값진 진주"처럼 귀하게 대하신다. 우리를 발견한 것이 너무도 기뻐서 당신의 모든 것, 외아들까지 내어 주시는 분이 하느님 아버지다. 이를 체험한 아들 예수는 당신의 살과 피, 목숨까지 내어주시며 아버지를 따른다. 그 모습이 모든 것을 다 처분하여 진주를 사는 예수님의 모습이자 당신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이 비유에서) 큰 기쁨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사랑이다."(J. Jeremias)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요한 4,9-11)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보물을 사기 위해 모든 것을 내놓으신 사랑이었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제모습이다, 하느님에게 우리가 그렇게 소중하였듯, 우리에게 하느님이 그렇게 소중할 때 하늘나라가 시작된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사랑할 때 하느님 나라가 시작된다. 삶에서 놓쳐서는 안 될 지혜가 여기 담겨있다.
첫 독서에서 하느님은 솔로몬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신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주시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한다. 솔로몬의 청원에 하느님은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라고 이르신다.
하느님이 주신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지혜는 무엇일까? 내 삶 속에 보물이, 내 안에 진주가 숨겨져 있음을 깨닫는 지혜다. 하느님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고, 하느님 안에서 나를 보고, 내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지혜다. 그렇게 보물을 발견하면 기뻐하며 즉시 결단을 내릴 순간이다. 모험을 무릅쓴 결정의 용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명까지 내던지는 투신이 지혜를 내 것이 되게 한다. 등산이 좋은 운동이라고 깨달은 한 친구가 고기능의 등산복을 준비하였다. 그 옷을 자랑하며 입고 다니지만 산에 오르지는 않는다. 그 친구가 등산 효과를 누릴까? 지혜를 깨닫고도 실행에 옮기지 않을 때 지혜는 내 것이 되지 못한다.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지혜는 그저 새로운 지식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바꾸기를 요구한다. 비록 밭에서 보물을 발견하고, 내 안에서 진주를 보았더라도 아직 내 것은 아니다. 가진 모든 것을 팔 용기, 온전한 헌신이 그 진리를 내 것이 되게 한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오직 찰나적인 어떤 순간만을 기다린다거나 자신이 가진 것들도 함께 가지고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착각하는 것은 이미 하느님의 나라를 경시하는 것이다." (S. Cipriani)
우리도 보물이 묻힌 밭을 발견하고, 그 밭을 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망서리는 이들에게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전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