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야고보 사도 축일 -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성 야고보 사도 축일 - 할 수 있습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청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난을 초래할지 알지도 못하면서 청하는 제자들과 그 어머니처럼,
주님을 따르는 길이 어떤 길인지 모르면서도 당신을 따르겠다고 시작한 제자의 길.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성경에서 '술잔'은 죽음, 혹은 세례(죽음과 새로 남)의 상징이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루카 22,42)
"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요한 18, 11)]
제자가 따르는 길은 주님이 가신 길이고, 그 길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다.
예수님을 따름은 영광에 앞서 새로 남을 위한 고통이다.
그래도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변을 드리는 모습에서,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감행하려는 모험과 열정임을 발견한다.
"신앙인의 의무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무엇인가를 감행하는 데 있다.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없어도 우리들 각자가 하늘나라를 위해 무엇인가를 감행해야 한다.
불안과 위험, 수고함, 걱정, 불확실 등등이 전혀 없이 행하는 모험을 모험이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바로 여기에 믿음의 장점과 고귀함이 놓여있다." (J. H. 뉴먼, 신앙의 모험)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제자들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말씀이다.
실제로 제자들은 자기들이 말한 대로 행동했고, 그 때문에 고난을 당했고, 은총으로 이겨냈다.
야고보는 주님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드린 대답 대로 제자들 중 최초로 순교한다.
요한은 말씀을 들은 이후 누구보다 앞서 가지 않는다.
스승 예수께서 낮아지셨듯, 앞서 보고, 앞서 도착하더라도 섬기는 마음으로 베드로를 기다린다.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독서)
"야고보와 요한이 단지 이기심 때문에 예수님의 물음에 할 수 있다고 약속드린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우러러 보고 그분을 열렬히 사랑하며 그분을 믿고 가까이 있고 싶기 때문에 약속한 것이다.
예수님을 우러러 뵈면 뵐수록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용기를 더 얻게 된다.
그분만을 우러러 뵐 때 “나를 바침”이
“그분에 의해 받아들여짐”으로 변화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요하네스 부어스, 그때 예수께서 물으셨다)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