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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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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일 가해 - 하늘 나라의 열쇠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3-08-28 15:08   조회: 2,692회

본문


연중 제21주일 가해 - 하늘 나라의 열쇠

 


삶은 맺고 푸는 가운데 이어진다. 약속을 맺기도 하고 풀기도 하고, 한이 맺혀 죽어가다가 그 한을 풀면 살아나기도 한다. 맺고 푸는 일이 잘못되면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인다. 약속이나 인연을 잘못 맺으면 괴롭고, 인간관계든 경제문제든 풀리지 않는 문제도 우리를 괴롭힌다. 잘 맺고 잘 푸는 길이 없을까? 맺고 푸는 도구가 “열쇠”다. 오늘 성경 말씀은 열쇠 이야기다.

첫 독서 이사야서는 맺고 푸는 권한을 “다윗 집안의 열쇠”라는 상징으로 표현한다. 이 권한은 왕 아래의 “시종장”(왕정국가의 최고위 직책인 총리, 창세기에서 요셉이 이집트에서 오른 직책)에게 주어졌었다. 그런데 자신만을 생각하며 세도를 부리던 시종장 세브나를 이 직책에서 파면하고, “하느님의 종” 엘야킴을 그 후임으로 세우는 이야기다. 이때 주님은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라고 선언하신다. 열쇠의 주인, 맺고 푸는 권한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므로, 열쇠의 최종 주인은 인간이 아니고 하느님이라는 말씀이다.

복음은 “다윗 집안의 열쇠”가 아니라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상인 “하늘 나라의 열쇠” 이야기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이 열쇠를 주신다.

매고 푸는 권한인 “열쇠”를 유다인들은 “금지하고 허락하는 권한”, 즉 공동체에서 내쫓거나 받아들이는 권한으로 해석하였고, 초대 교회에서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으로 해석하였다. 묵시록에 의하면 이 열쇠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로, 영원한 생명의 열쇠였다(묵시 1, 18 참조). 예수님이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는 이"(묵시 3, 7)라고 전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신 것이다. 곧 베드로로 대표되는 교회에 매고 푸는 권한이 위탁된다.

열쇠는 성경뿐 아니라 동 서양 문화권에서 '열거나 닫는 수단'의 상징으로 어떤 문제의 해답, 사건의 해결책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행운의 열쇠'로 선물하거나 목걸이의 소재 등 다양하게 쓰였다. 집이나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리는 꿈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고난의 시작을, 열쇠를 찾음은 어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수피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밤 나스루딘이 가로등 아래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스루딘이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그 행인은 열쇠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한 시간이 넘게 찾아봤지만 열쇠를 찾을 수 없자 행인이 물었다. "정말 여기서 잃어버린 것 맞소?" 나스루딘이 어두운 골목길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아니요! 저기 컴컴한 데서 잃어버렸습니다." 행인이 어이가 없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이 가로등 밑에서 열쇠를 찾고 있습니까?" 나스루딘이 대답했다. "여기가 환하니까요."​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풀어갈 열쇠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환한 곳이 아니라 열쇠를 잃어버린 곳에서 찾아야 한다. 삶이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총이라는 점을 망각한 지점,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인생이 자기 것인 양 착각하여 탐욕을 부리며 교만해진 그 지점이 열쇠를 찾아야 할 지점, 우리가 돌아가야 하는 곳이다. 그것을 회개라고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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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어떻게 다시 삶의 의미를 되찾고 세상의 주인을 알아보고 우리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시고 열쇠를 맡기신다.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남에게 들은 말이 아니라 내가 체험한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요구하신다. 나 자신의 고백이 참 신앙이기 때문이다. 그 신앙이 열쇠를 받는 길이다.

예수님의 질문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살아 계신 하느님 theos zon"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이 표현은 하느님이 지금도 생명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 세상의 주인으로서 생명과 죽음의 열쇠를 지니신 분이라는 의미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는 분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우리가 찾아야 할 분이 바로 이분이다. 어디서 이분을 찾을 수 있을까? 살아 계신 하느님은 살아있는 삶에서 만나게 된다. 남들이 전하는 말이 아니라 살아있는 내 삶에서 살아 계신 주님을 체험해야 한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을 내가 만나, 나의 신앙을 고백하면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게 될 것이다(A. 그륀).

이 열쇠는 잠그기도 하고 풀기도 하는 열쇠다. 이 열쇠로 무엇을 매고 무엇을 풀어야 할까? 인생에는 잠가서 묶여야 할 것과 풀어야 할 것이 있다.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거짓된 믿음에서 풀려나고, 영혼과 육신을 옭아매는 상처에서 풀려나고, 자유를 빼앗아가는 악의 세력에서 풀려나야 한다. 그러나 풀려남만으로는 부족하고 잠가서 묶기도 해야 한다.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처럼(요한 15, 4 참조) 주님과 나를 하나로 묶어야 한다. 주님의 자비에, 주님의 말씀에 나를 묶어야 한다

남들의 이야기처럼 그저 겉도는 신앙, 탐욕, 교만, 두려움, 부자유의 사슬에서 풀려나와, 내 삶에서 만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신앙, 그리스도와 나를 하나로 묶어주는 신앙으로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 신앙의 열쇠로 열고 들어간 새로운 세계가 얼마나 놀라운지 둘째 독서에서 바울로 사도는 이렇게 찬미한다.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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