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승천 대축일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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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대축일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
오늘은 성모 마리아가 하늘에 불려 오르셨음(몽소승천 蒙召昇天 Assumptio)을 기리는 성모승천 대축일이다. 聖經이 아니고 聖傳에 따른 이 가르침에 관해 과학적 논증이나 역사적 사실성을 떠나, 신앙 차원에서 성모 승천의 메시지를 성모님의 삶을 통해 살펴보자. 성모님은 혼인 전 임신을 한 미혼모였고, 헤로데를 피해 숨었던 이집트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아기를 성전에 봉헌하며 가슴을 찌르는 아픔을 예고 받았고, 어린 예수를 성전에서 잃고 3일간 애태웠으며, 아들 예수님의 활동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마음 졸이다가, 십자가에 처형된 아들의 시체를 품에 안아야 했다. 그 후로 아들의 제자들을 돌보며 여생을 지낸 분이시다.
인간적으로 더없이 기구한 운명을 살아가신 마리아는 어떻게 하늘로 오르셨을까?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과 함께하신 분이셨다.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과 활동과 죽음에 함께 하셨다면, 부활하여 승천하신 신비에도 함께 참여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성모님도 부활하시어 승천하셨을 것이라는 믿음은 신앙의 결론이었다(聖傳).
아들 예수님과 늘 함께 하신 성모님은 온 생애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한 봉사와 섬김으로 사셨다. 예수님의 탄생 이전에는 엘리사벳을 찾아 섬기고, 예수님 생전에는 아들을 섬기다가, 예수께서 지상을 떠나신 후에는 그 제자들을 섬기고, 하늘에 오르시어 아들 예수를 따르는 모든 이의 어머니로서 세상 사람들을 자녀로 섬기신다. 성모님은 그 섬김의 결과로 하늘에 오르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우리의 어머니다. 그 마음과 그 삶을 담은 성모님의 찬미가가 복음에서 선포된다. 이 찬미가에 마리아가 하늘에 오르신 비밀이 담겨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예수님 시대에 성경을 잘 아는 유대인이 이 구절을 접했다면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리라.”(하바 3,18)라는 예언자 하바쿡(기원전 620년경)의 노래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는 것은 위대한 예언자들의 경지였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 마리아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뛸 수 있다니…. 저 처녀가 하바쿡처럼 참으로 하느님을 만났구나. 저 처녀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리아는 참으로 하느님을 만났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하느님을 품었고, 지금 그 기쁨을 노래하신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에서 ‘영혼’은 구약의 ‘네페쉬’, 신약의 ‘프시케’의 번역이다. 네페쉬는 “생명체”를 뜻한다. “하느님께서…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고 할 때의 생명체다. 본래 네페쉬는 ‘목구멍’을 지칭했다. 그 의미는 하느님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숨으로 살아가고,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양식으로 살아가는 인간을 뜻한다. 이 찬가를 통해 마리아는 자신이 하느님 없이 숨 쉬지 못하고 하느님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네페쉬임을 고백한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느님께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자신을 주님께 바쳐드릴 수 있었다. 우리 또한 하느님의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네페쉬가 되라는 초대로 들린다.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비천함을 돌보셨기에 마리아는 행복하다. 하느님의 돌보심을 마리아는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이라고 찬미한다. 여기서 사용한 "큰일"이란 표현에 강생의 신비가 담겨있다. 요즘은 ‘큰일’이란 ‘중요한 일’ 정도의 의미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 "큰일"은 하느님이 행하신 ‘엄청난 일’을 의미했다. 즉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일(신명 10,21), 바빌론 유배에서 해방시키신 일(예레 33,3)이 "큰일'이었다. 마리아가 ‘나에게 큰일을 하셨다’는 말은 구약의 큰일들과 같은 엄청난 일이 자신을 통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사실,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이 사람으로 오시는 것보다 더 ‘큰일’은 없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구원은 가치의 전복을 통해 이뤄진다. 동정녀 잉태 이후,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그 새로운 세상에서는 교만한 자, 권세 있는 자, 부유한 자들이 내쳐지고 보잘것없는 이, 비천한 이, 굶주린 이들은 높아질 것이다. 신앙인은 새로운 세상에 희망을 두는 이들, 전환을 믿는 이들이다.
이 구원의 전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확대된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느님으로부터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22,17-18)라는 말씀을 듣는다. 하느님은 유대인만이 하느님이 아니었다. 이렇게 마리아의 노래는 단순히 개인의 노래가 아니다. 하느님 백성 전체에 내리는 구원을 전하기에 우리 모두의 노래가 된다. 이처럼 성모님의 찬미가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것이라는 희망과 신앙을 노래한다.
세상살이가 힘들다고들 한다. 전염병에 불경기 가운데 서로 불목하고, 병들고, 외롭고, 화가 나고, 우울하고, 죽고 싶다고들 한다. 이때야말로 성모님의 찬미가를 부르며 변화에 대한 믿음을 갖고 희망을 새로 할 때다. "영혼은 오직 희망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희망은 우리의 영혼을 만드는 옷감이다."(G. 마르셀) 절망이 사람을 죽이지만 희망이 죽음에서 우리를 살린다.
성모 승천 대축일은 성모님의 희망과 신앙이 우리의 희망과 신앙이 되도록 초대받는 날이다. 지금 아무리 살기가 힘들고 어려움이 많더라도 우리의 비천함을 하느님이 굽어보시고 당신 팔로 권능을 펼치신다는 희망과 기쁨을 노래하는 날이다. 희망과 기쁨을 노래하는 신앙인은 성모님이 하늘로 불려올리셨듯, 하느님의 자비로운 품에 영원히 머무르게 된다는 기쁜 소식이 선포되는 날이다. 이 기쁜 소식에 성모님과 함께 노래하자.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