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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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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목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3-10-26 11:04   조회: 2,580회

본문


연중 제29주간 목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5)라고 이르시고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 하고 축복하시던 분이

오늘은 왜 평화가 아닌 분열을 일으키러 왔고,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하실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불"은 종말의 심판에 나타나는 불(유딧 16,17; 이사 66,15-16; 에제 38,22; 말라 3,19)로써,

불의 심판은 곧 당신이 받으실 수난의 고통을 암시한다.

이 "불"은 또한 성령에 의한 세례와 성령 강림(루카 3, 16; 사도 2, 3.19)을 연상시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분열"은 마태 10,34에서는 "칼"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분열"은 거짓 예언자들이 주는 평화(예레6,14; 8,31; 에제13,10.16)를 거부하는 역설적 표현이다(주석성경).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속에서 추구하는 무사안일한 평화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시작하며 역동적으로 이어지는 평화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이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다.

자신(Ego)이 중심에 서있으려는 본능에 "분열을 일으키는" 식별의 과정​과,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이루려는 야망에 "불을 지르는" 정화의 과정​이 없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구원을 성취하려는 본능과 야망을 따를 때 하느님이 계실 자리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참 평화의 길에 놓인 식별이나 정화는 자기중심적 인간 본능에는 걸림돌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걸림돌을 통하여 나 있다."(키르케고르)

말씀에서 우리가 걸림돌에 넘어질까 염려하시며 본능과 야망을 태우는 불길을 외면하지 말라고 격려하시는 주님,

우리 스스로 불을 지를 수 없는 상황에서 당신 자신을 불태우심으로 우리를 정화하시는 주님을 만난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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