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 가해 - 하늘 나라의 혼인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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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일 가해 - 하늘 나라의 혼인 잔치
독서와 복음은 잔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독서는 하느님이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주실" 잔치를 베푸실 것이라는 예언을 선포한다. 복음은 구체적으로 혼인 잔치에 하늘나라를 비유한 말씀인데, 이 잔치에 초대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 참석은 했으나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나는 이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비유는 하느님이 인간을 구원으로 초대하셨는데, 이를 거부하거나, 초대에는 응했지만 준비를 못 해 제외되는 사람들을 그린 구세사로 볼 수 있다. "비유는 시대를 뛰어넘는 역동성과 현실성을 지니기에"(J. Jeremias),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 비유를 심층적 차원에서 각 개인에게 벌어지는 사건인 "인간이 되어가는 여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A. 그륀, 예수, 구원의 스승. 참조)
이 해석에 따르면 초대란 부르심, 곧 소명을 받았다는 말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잔치에 초대받았다는 말씀은 하느님은 사람에게 소명을 주셨다는 뜻이다. 어떤 소명일까? 임금은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초대하였다. 혼인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합일의 잔치다. 하늘 나라의 혼인 잔치란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 되고,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 되는 잔치를 뜻한다. 하나 됨, 혹은 친교를 뜻하는 라틴어 communio는 cum과 unus의 합성어로 영어로 풀자면 with + one, 즉 '더불어 하나 됨'이란 의미다. 이 단어 communio는 영성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믿는 이는 성체를 모심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하느님과 하나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써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 들어가 神化 되도록 초대받았다. 즉, 신앙인이란 그리스도와의 합일을 통하여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소명을 받은 사람이다. 신앙의 목표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영원한 존재, 신적인 존재로 변화되는 구원이다.
이 초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고 복음은 전한다. 주님은 우리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길로 초대하셨는데, 눈앞의 일에 매달려 하느님이 주신 소명을 외면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초대를 전한 주인의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인간의 자기중심적 본능은 자기 밖으로 나오라는 초대, 자신을 넘어서라는 영적인 초대를 일부러 없애버리는 경향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자 왕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사회적 자격이나 윤리적 조건은 없다. 죄인이든 악인이든, 배웠든 못 배웠든, 젊든 늙었든, 모든 이가 초대받았다. 이 비유는 더 나아가 인생의 모든 것이 하느님과 하나가 되도록 초대받았다는 뜻을 내포한다. 내 안의 모든 영역, 의식과 무의식, 방황과 갈망, 선행의 기억과 악행의 부끄러움까지도 모두 하느님의 초대에서 제외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임금은 이들을 잔치에서 내쫓는다. 혼인 예복이 무엇일까? 당시 관습에 따르면 혼인잔치에 초대할 때는 예복도 함께 보냈다고 한다. 따라서 혼인 예복을 입는 것은 이전의 옷이 아닌 초대하신 분이 주신 옷을 입는 것을 말한다. 혼인 예복을 입으면,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 된다. 혼인 예복을 입음으로 자신의 장점과 단점, 인생에서 겪은 기쁨과 슬픔, 아픔과 상처 모두가 주님께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혼인 예복을 입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임을 받아들이는 삶을 말한다. 즉 주님의 초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주님을 몰랐던 이전의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이들은 초대받기 전에 살아온 태도를 그냥 지닌 채로 잔치만 즐기려는 이들이다. 이들은 아무런 변화 없이 적당히 어둠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잔치에 온다. 그런데 모든 어둠이 드러나는 하늘나라의 잔칫상에서 이들의 어둠은 숨을 곳이 없다. 어둠이 갈 곳은 어둠뿐이다. 예복 없이 잔치에 들어온 이들을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라는 임금의 말씀은 이를 뜻한다. 어둠 속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라는 섬뜩한 말씀은 구원으로 초대받은 신앙인이라고 하더라도 예복을 입지 않고 이전의 자기중심적 방식을 고집하면 인생은 자기 파괴와 울부짖음으로 끝난다는 경고다. 하느님의 초대에 응한다면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그 위에 하느님이 주신 예복인 조건 없는 사랑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과 하나가 된다.
한 젊은이가 여행을 하다 보니 일곱 명의 인부가 정으로 돌을 쪼고 있었다. 젊은이가 첫 인부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인부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이 지겨운 일이 끝날 때까지 시간이나 때우는 거지." 둘째 사람에게 물어보자 "식구들과 먹고살려고 돈을 버는 중이라오." 다음 사람에게 질문을 하자 "보다시피 아름다운 조각을 깎고 있소." 네 번째 인부에게 물으니 "성당을 짓는 중이오." 다섯 번째 사람에게 묻자 "성당 건축을 통해 마을 사람들과 나중에 태어날 후손들을 돕고 있다오." 여섯 번째로 묻자 "앞으로 여기서 하느님을 예배할 사람들을 섬기고 그 일을 통해서 나 자신을 깨우치고자 성당 건축을 돕고 있소." 끝으로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나이는 많아 보였지만 눈이 빛났고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지금 노인께서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겁니까?"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느냐고? ‘나’가 있어야 그자가 뭔가를 하지. ‘나’라는 물건은 여러 해 전 하느님께 흡수당했다네. 지금 하느님이 이 육신으로 일하고 계시는 걸세!"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두고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하고 물으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인생이라는 지겨운 시간을 때우고 있는가? 먹고살려고 돈을 버는 중인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초대에 감사의 예복을 입고 참여하고 있는가? 주님은 하늘나라의 혼인잔치, 곧 주님과 하나가 되는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셨다. 우리는 초대에 응해서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왔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어떤 옷인가 살펴보자. 아직도 옛날 옷을 입고 있다면, 아직도 이기적 자아에 묶여 자기중심적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얼른 잔치 예복을 입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주님이 주신 예복, 즉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모심으로 주님을 입는다면 삶은 내가 아닌 하느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는 잔치가 될 것이다.
[출처]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