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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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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왕 대축일 가해 -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3-11-28 09:21   조회: 2,524회

본문


그리스도 왕 대축일 가해 -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오늘은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왕이심을 기념한다. 왕이나 왕국이라는 단어는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과거에 왕은 한 나라의 통치자로 대개 세습되었고, 성군도 있지만 악명 높은 폭군도 있었다. 백성들 위에 왕이 군림하는 왕국 제도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로 보인다.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 왕이 세상의 왕과는 아주 다른 왕이심을 전한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왕처럼 세습이나 무력을 사용하여 왕이 되지 않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맏물로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자식에게 물려주는 세속의 왕국과 반대로 "그리스도께서는…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이라고 둘째 독서는 전한다. 그 왕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는" 목자다(첫 독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라는 복음 말씀은 그리스도 왕국이 백성이 왕권에 복종하는 왕국이 아니라 백성인 우리를 왕권에 참여시키는 왕국임을 일러준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그리스도가 하느님을 섬기며 사람들을 돌보시는 왕국이 그리스도 왕국이고, 우리에게 그 왕국을 차지할 길이 열렸다는 놀랍고도 기쁜 소식이 선포된다.

권력으로 이득을 보려는 통치자들이 아귀다툼하는 세상에서, 생명을 보살피고 기쁨에 초대하는 왕은 참으로 그리운 왕이다. 구체적으로 어디서 이 왕을 만나고, 어떻게 그 왕국을 차지할까? 오늘 복음에서 왕이신 예수님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고,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라고 선언하신다. 왕이신 그리스도는 "굶주린 이, 헐벗은 이, 감옥에 갇힌 이" 안에 계신다는 선언이다. 우리가 섬기는 진정한 왕 그리스도는 보잘것없는 작은 이들 안에 계시기에, 그들을 섬길 때 주님을 섬기는 것이고, 그렇게 하여 이웃과 내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신비가 그리스도 왕국의 신비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 왕을 만나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린 러시아의 전설이 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자 그를 경배하러 갔던 동방의 세 왕 이 외에 북쪽 작은 나라의 왕도 있었다고 한다. 네 번째 왕인 그는 정성 들여 짜낸 아마포와 잘 손질한 부드러운 모피와 어머니가 마련해 주신 아카시아 꿀과 금과 보석 등의 예물을 가지고 별을 따라 예수님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났다. 어느 날 밤 한밤중에 문밖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 넷째 왕이 나가보니, 거지 여자가 딸아이를 낳고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 가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께 드리려던 아마포로 아기의 몸을 감싸주고 날이 밝자 예수님께 드리려던 보석으로 모녀의 보호책을 세워주었다. 그 여인은 "오늘부터 내 마음속에 당신을 왕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넷째 왕에게 말했다.

동방 박사 세 왕과 떨어져 혼자 가던 중 넷째 왕은 고통받는 노예들을 보고 예수님께 드리려던 예물로 몸값을 치르고 해방시킨다. 강도를 만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발견하자 예수님께 드리려던 모피로 몸을 감싸 주었다. 넷째 왕은 해변가에서 빚 때문에 어린 아들이 노예로 끌려가자 통곡하는 어머니를 보고, 그 아들을 대신하여 노예선을 탄다. 30년간 노예선에서 지낸 다음 늙고 병들어 육지에 버려진 넷째 왕은 포기하지 않고 지친 몸으로 계속 예수님을 찾아 나선다.

그러던 어느 날 예루살렘에 이르러 수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산 위로 올라가기에 무심결에 따라간다. 군중들이 모인 산 위에 세 사람이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있었다. 넷째 왕이 가운데 십자가를 보자 세찬 충격 속에 "아아, 주님!" 하고 외친다. 예수님도 그를 알아보고 사랑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신다. 넷째 왕은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께 드리려던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 모두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남아 있습니다. 이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아울러 제게 작은 도움을 받고 한평생 하루도 빠짐없이 제게 마음과 정성을 보내온 이들의 마음도 받아 주십시오"라고 말한 다음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이 사람이야말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만난 이로, 그리스도 왕국의 신비를 체험하고 그 나라에 들어간 사람을 대표한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왕국의 도래와 더불어 심판이 따르는데, 예수님은 "굶주린 이, 헐벗은 이, 감옥에 갇힌 이에게 사랑을 베푼 것이 나에게 베푼 것이고, 사랑을 베풀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베풀지 않은 것"이라고 이르신다. 심판의 기준이 우리가 저지른 죄악이 아니라 우리가 실천한 사랑이라는 말씀이다. 그러기에 "죄는 다름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 당신의 사랑이 당신을 심판할 것이다."(C. 까레또)라는 말이 이 모든 상황을 요약한다.

"굶주린 이, 헐벗은 이, 감옥에 갇힌 이"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진정한 사랑은 억지로 실행되지는 않는다. 상대방이 사랑스러울 때 사랑할 수 있다. 이를 위한 관건은 '굶주린 이, 헐벗은 이, 감옥에 갇힌 이'가 누구로 보이는가 하는 점이다. 벌받고 있는 죄인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십자가를 지신 주님으로 보이는가?

굶주리거나 헐벗거나 감옥에 갇힌 이들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보잘것없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겉모습만 본다면 그들이 보잘것없지만, 겉모습 너머로 그 사람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마주할 때 그를 사랑할 수 있다. 서로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내면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보잘것없는 '나'와 보잘것없는 '너'가 하나가 될 때, 사랑으로 세상이 제 모습을 찾는 곳이 그리스도 왕국이다. 그때 예수님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마치 넷째 왕처럼 그렇게 우리가 왕이 되라고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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