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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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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일 나해 -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4-02-12 09:49   조회: 2,234회

본문

연중 제6주일 나해 -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독서와 복음이 나환자 이야기다. 첫 독서는 "악성 피부병(나병) 환자는 부정한 사람이므로, 진영 밖에 자리를 잡고 혼자 살아야 한다."라는 율법의 엄격한 격리 규정이다. 나환자에게는 병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사회로부터 격리였다. 누구든 병이 들면 간호를 받아야 하는데, 나병환자는 간호는커녕 격리라는 벌을 받아야 했다. 나환자 시인 한하운은 그 설움을 이렇게 읊었다. "죄명은 문둥이.....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가족이나 이웃으로부터 거부당하면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처지를 거부하게 된다. 그러기에 나병은 하늘이 내린 형벌, 천형으로 불렸다.

복음은 나환자의 치유를 통해 천형과 같은 소외가 해소되는 과정을 전한다. 나환자는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고 도움을 청하였다." 천형에서 벗어나려는 절박한 심정에서 율법의 격리 규정을 어기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자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한다. 그런 다음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신다." 성경에서 "만진다는 것"은 "내가 그대를 받아들인다."는 상징적 몸짓이다. 예수님은 사회적 금기나 종교적 격리 규정을 넘어서서 나환자에게 손을 대시며 한 인간으로 받아들이신다.

나병은 신체 접촉을 통해 전염된다. 예수님이 나환자에게 손을 대면 나병이 전염되지 않을까? 실상 나병에 전염되듯 인간의 모든 죄악을 받아 짊어지실 주님의 운명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이어서 예수께서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하신다. "빛이 생겨라"(창세 1,3)는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셨듯, 새로운 창조를 선언하시는 말씀이다. 그 순간 나병이 나아 깨끗하게 된다.

문둥이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외롭고 서러운 때가 있다. 질병으로, 노환으로, 배움이 짧아서, 벌어 놓은 재산이 없어서, 성격 탓에, 가족 때문에 등등 남들에게 뒤처지고 주변으로부터 소외될 때가 있다. 거기에 더해서 인간끼리 주고받는 낙인과 굴레는 얼마나 아픈가? 그러한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이 악순환에서, 소외에서 해방될 것인가?

예수님이 나환자를 치유하는 출발점은 "가엾은 마음"이었다. 복음에 사용한 "가엾은 마음 splanchnistheis"의 어원상 의미는 "내장이 끊어지는 느낌(gut-wrenching empathy)"을 말한다. 성경 시대의 용례에 의하면 내장은 상처 입은 감정을 느끼는 부위였다고 한다.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은 단순히 불쌍한 생각이나 동정을 넘어서서 나환자의 아픔을 내장이 끊어지는 통증으로 공감하는 마음이었다. 그 연민의 마음으로 얼마나 아프냐고, 얼마나 외로웠느냐고, 얼마나 서러웠느냐고 나환자를 받아주신다.

오늘날 사회에서 비극적인 잔혹 범죄나 분열과 대립 등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로 인해 불안감과 불신감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마치 가시를 바짝 세운 채 몸을 웅크린 고슴도치처럼 산다. 고슴도치들이 많아질수록 결국엔 서로에게 더욱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고립감과 외로움만 가중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희주 박사는 이러한 우리 사회를 "연민 결핍 사회"라고 규정하며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인 연민(憐憫)이라고 강조한다. 예수님이 나환자를 대하시던 "가엾은 마음", 사람다움의 지표로 동양에서 강조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필요한 시대라는 말이다.

최근의 과학적 연구에서는 연민이 신체적 건강도 증진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사회가 연민으로 연결되면 염증을 감소시키고, 신체의 면역 기능을 강화하며, 질병 회복 속도를 높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또한 연민의 감정을 품었을 때 환자의 자율신경계가 진정되고, 호흡과 심장박동 수의 변화 폭이 건강하게 조절된다고 한다. 연민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기 때문이며, 사회적으로도 연민을 실천할수록 ‘나’와 ‘너’,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세계적인 선승이자 의료 인류학자 조안 할리팩스(Joan Halifax)는 '연민은 어떻게 삶을 고통에서 구하는가'라는 책에서 현대 사회가 겪는 고통을 치유하는 길은 연민에 있다고 강조한다. 연민에 기반하여 이타심을 발휘하고, 타인에게 공감하며, 도덕적 진정성을 갖고, 타인을 존중하며, 타인을 위해 희생하면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이 열린다고 주장한다. 때로 우리는 연민 실천 과정에서 고통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과의 깊은 유대를 인식하는 연민의 마음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민을 통해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스트레스와 번아웃으로부터 스스로를 치유할 힘을 얻는다. 나아가 우리는 모든 존재와 사물이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보는 드넓은 관점, 그리고 삶과 죽음을 여실하게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고 한다.

토마스 머튼은 “연민의 전체 개념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서로의 일부가 되고 서로에게 관여하는 상호 의존성에 관한 민감한 알아차림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파악했다. 즉 모든 생명을 상호 의존적이고 서로 얽혀 있으며 서로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지 않고 사심 없는 행동을 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러므로 연민은 삶을 고통에서 구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드러나듯 불행한 인간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신다. 언제나 인간을 연민으로 대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나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시는 분이시다.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어 받아들이듯, 주님은 나의 좋은 점뿐 아니라 나병처럼 위험하고 부족하고 힘든 부분을 받아주시고 품어주신다.

그분께서 연민의 마음으로 나를 받아주심을 체험할 때, 나도 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더 나아가 나도 연민으로 나와 연결된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어 내 삶은 이전과 달리 새로 시작하게 된다. 신앙의 기쁨을 안고 희망으로 일어선다. 이를 체험한 바오로는 새로운 삶의 태도를 둘째 독서에서 이렇게 일러준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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