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주간 월 -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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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주간 월 -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무덤은 죽음이 자리 잡은 곳, 어둠이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다.
무덤은 또한 부패의 냄새가 나는 곳, 인간의 타락을 상징한다.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더러운 영에 의해 타락하여 어둠 속에 있는 인간은 자학적이고 파괴적이며 엄청남 힘을 지닌다.
성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규율이나 통념의 쇠사슬로 그를 묶어두려고 하지만 불가능하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세상에서 도망쳐 홀로 있기를 원하며, 동시에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원해서 소리를 친다.
서로 대립되는 두 감정이 동시에 혼재하는 양가감정(兩價感情, Ambivalence) 상태이다.
타인들로부터 상처받기 전에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려고 한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치유받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이를 거부하는 양가감정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건강을 회복하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환자들의 반응이기도 하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여기서 이름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표현한다.
예수님은 환자의 외적 일탈을 나무라시지 않고 이 질문으로 환자에게 내면을 보게 하신다.
환자는 예수님의 물음 앞에서 자신이 정말 누구이며 참된 본질이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원문에 사용한 "군대"는 정확히 "군단(Legio)"이라는 로마 군대 용어로 6,000명의 군인으로 구성되었다.
환자의 영혼은 6,000명의 군화로 짓밟힌 상태 - 거부당하고 상처 입은 그의 인격은 수없이 갈라져 있다.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이렇게 짓밟히고 갈라진 내면의 자아가 드러난다.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생뚱맞은 장면이지만 상징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다인들에게 돼지는 불결한 동물의 상징이고 호수는 혼돈의 상징이다.
환자의 불결하고 더러운 요소들이 환자의 내면에서 나와 불결함의 상징인 돼지 속으로 들어갔다.
불결한 동물로 들어간 더러운 영이 혼돈의 상징인 물속에 빠져 죽는 것은 악의 소멸을 상징한다.
"그들(돼지를 치던 이들과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의 재산인 돼지들을 잃어버린 주민들이 보인 반응이다.
한 사람의 인격보다는 자신이 소유한 재물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걸림돌이다.
악령에서 해방되는 감동보다는 재산과 관습을 지키는 일에 급급한 현실을 보여준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환자가 참으로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그에게 상처를 입혔던 사람들과 화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자신의 신원을 잃었던 바로 그곳(집과 가족)에서 신원을 회복해야 한다.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악령 들린 사람처럼 생명의 위협과 위기를 극복한 사람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생동감 있게 전할 수 있다.
그때 청중들은 하느님의 신비에 마음을 연다. (안셀름 그륀, 마르코복음묵상 - 예수, 자유의 길, 참조)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