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일 나해 -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본문
사순 제1주일 나해 -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지난 수요일 우리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는 말씀과 함께 머리에 재를 받으며 사순절을 시작하였다. 먼지로 돌아갈 우리가 사순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오늘 첫 독서에서 하느님은 홍수에서 구해주신 노아에게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시며 그 표징으로 무지개를 주신다. 둘째 독서는 구원을 가져다준 노아의 방주가 바로 우리가 받은 세례의 예형이라고 일러준다.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몇몇 사람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신 후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선포하신다. 홍수를 건너는 방주, 방주의 본형인 세례, 악마의 유혹을 넘어서는 하느님 나라로의 회개가 사순절의 의미라는 말씀이다.
회개, 즉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기 전 성령의 이끄심으로 광야로 가셨다. 성경에서 광야는 이중적이다: 모든 것이 결핍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며, 동시에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자신과 하느님의 존재를 체험하는 곳이었다. 선과 악, 진리와 허위가 투쟁하는 장소이자 무지와 반항이 이어지고, 기대와 허무가 교차하는 곳이었다. 그 가운데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동시에 하느님을 체험하는 곳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 백성이 탄생했다(신명 27,9).
한 편 광야는 그곳을 거쳐간 후에 복을 받는 곳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거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도달하였다. 요한 세례자는 광야에서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렸다. 예수님도 탄생 직후 광야를 거쳐 이집트로 피난을 가셨다. 복음에서 들었듯 예수님은 광야의 유혹을 이겨 내셨다. 거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 것인지 준비하셨을 것이다. 예수님 이후 주님을 더욱 가까이 따르려던 교부들은 광야를 찾았다. 텅 비었지만 유혹이 넘치는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순절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광야로 떠나는 때다. 우리들의 광야는 어디일까? 지리적 차원의 사막은 아니더라도 의미 차원의 광야는 가까이 있다. 살아가며 의지할 곳 없는 상태,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하는 순간, 혹은 기쁨이 없는 권태로운 시간이 있다. 그 상황은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위기이자, 동시에 자신의 무력함을 직시하며 하느님께만 의지하는 때이기도 하다. 극기하는 가운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 침묵 가운데 하느님과의 내밀한 사랑을 엮는 시간으로 대하면, 그곳이 사순절에 우리가 떠날 광야가 된다.
광야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하느님께로 회심할 방편은 무엇일까? 생명체가 제 모습을 찾는 과정, 사람이 제 모습을 되찾는 과정을 원불교의 큰 스승 이광정 상사는 "멈추고, 궁리하고, 결단하라."라는 세 단어로 정리한다. 고양이가 먹잇감을 앞에 놓고 취하는 행동을 보라. 첫째, 일단 멈추어서 대상을 주시하며 집중한다. 둘째, 결정적인 찬스를 잡으려고 궁리를 한다. 셋째, '찬스다' 싶으면 결단을 내려서 덮친다. 바로 "멈추고, 궁리하고, 결단하는" 세 단계 과정이다. 이 과정은 고양이뿐 아니라 모든 생물체의 생존 이치다. 사람이 제모습을 되찾아 하느님께 회심하는 과정에서도 이 이치를 따르는 수련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구체적인 일상에서 첫 단계로 어떤 일로 화가 나고 속이 상하면 기분대로 하지 말고 일단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를 위해 마음에 빈집(空家)을 만들고 거기에 들어가라고 가르친다. 그 빈집이 우리의 광야다. 광야의 히브리어 뜻은 '텅 빈 곳' 곧 '빈집'이다. 다음 단계로 골똘히 생각하는 궁리를 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위해 세상에 났는지? 내가 구원받을 방주는 무엇인지? 하느님이 지금 나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 궁리에 해당한다.
멈추고 궁리한 연후에 마지막 단계로 실천을 위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결단의 순간에는 옳은 것은 취하고, 그른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멈추고 궁리한 끝에 발견한 진리는 실행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우리가 내릴 결단은 주님께서 직접 선포하신 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결단이다. 이제까지의 길과는 다른 길을 갈 결단, 하느님을 섬기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결단이 회개다. 이렇게 "멈추고, 궁리하고, 결단하는" 가운데 우리 삶이 변화되고, 사순절은 은총의 시간이 된다.
누구나 변화하고 싶고 새로운 삶을 원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이 먼지에서 왔으니 먼지로 돌아가야 할 존재, 즉 죽을 인간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집착 때문이다. 인생의 광야에서는 사탄의 유혹도 언제나 달콤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광야에서 유혹을 당하셨던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머무르심을 믿자. 더 나아가 이렇게 유혹에 약한 보잘것없는 우리 모습을 고백하면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킬 은총을 주신다. 사순절에 우리가 돌아갈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찾으시려 집을 나서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치유하시는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상처 입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신 분이시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의 먼지에 힘과 달콤함으로 숨을 불어 넣어 주시는 분이시다.”(프란치스코 교황)
이제 멈추고 궁리하며 우리를 위하여 상처를 받으신 주님께 돌아갈 결단을 내리자. 그렇지 않으면 먹잇감을 놓쳐 굶어죽는 고양이 신세보다도 못해질 수 있다. 구원의 방주를 놓치고 홍수에 휩쓸리다가 사라질 수 있다.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다스리심, 하느님의 주권이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예수님을 통하여 가까이 왔다. 그 구원의 방주가 우리를 홍수와 죽음에서 구원한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간곡히 이르신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