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일 다해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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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일 다해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믿는 이라면 누구나 신앙을 통해 마음의 평화와 가정의 화목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다소 낯설고 불편하게 들린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한 가정 안에서도 식구들이 맞서 갈라질 것이다.” 평소 가는 곳마다 “평화를 빌어 주라” 하시던 예수님의 모습과는 모순되어 보이는 이 말씀의 참뜻은 무엇일까?
우리가 원하는 평화를 위한 방법은 다양하다. 그런데 모든 방법이 참된 평화를 주는 것은 아니다. 거짓 안정과 거짓 평화는 오히려 우리의 삶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예수님의 “불을 지르러 왔다”는 말씀은 참된 평화를 위해 먼저 거짓 평화를 깨뜨리라는 권고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받고 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그 상처를 잘 치료하면 건강을 회복하지만, 잘못 치료하면 만성병이나 고질병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고, 분열을 주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염증 환자에게 힐링한다며 달콤한 설탕물을 주어 병을 키우는 대신, 필요한 수술을 통해 건강을 회복시키려는 의사의 마음과 같다. 삶이 비뚤어진 이에게 진정제를 주어 양심을 무디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갈등을 통과하며 진리와 생명을 얻게 하시는 길이다. 거짓과 참, 죽음과 생명, 우리를 썩게 하는 것과 새롭게 하는 것을 가르는 식별의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참된 평화를 선택하도록 부르신다.
마음이 겪는 분열과 정화를 드러내는 한 사건을 소개한다.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마저 병든 중년 남성이 있었다. 택시 운전을 하며 가족사진을 보며 버티던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봉투를 두고 내렸다. 안에는 큰 액수의 돈다발이 있었다. 기사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돈 때문에 치료 한 번 변변히 못 받는 아내, 어깨를 짓누르는 빚더미, 좋은 옷 맛난 것 못 해줘 안쓰러운 아이들. … ‘이 돈이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이 돈만 있으면….' 그의 마음속에서 욕심과 양심이 엎치락뒤치락 싸우기를 몇 시간, 그가 차를 몰아 당도한 곳은 파출소였습니다. 잠시 후에 연락을 받은 주인이 황급히 달려와 고맙다고 꼭 사례를 하겠다고 하자, 그 기사는 "반나절 동안 천국과 지옥을 열두 번도 더 왔다 갔다 했는데, 이제 후련하네요.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로 남는 것이 최고의 사례입니다.”라고 말했다.
택시 기사가 겪은 분열은 자기 이익을 찾으려는 탐욕과 떳떳한 아빠로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양심 사이의 갈등이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고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획득한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까? 이 질문을 마주하여 “천국과 지옥을 열두 번도 더 왔다 갔다” 하는 갈등을 겪는 과정이 정화를 위한 분열의 과정이었다. 그 과정이 “나는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라는 예수님 말씀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 찾으려는 완고함을 습관적으로 따르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욕망과 양심의 분열을 겪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불길을 받아들일 때, 거짓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된다.
성경에서 불길은 하느님을 향한 열정,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뜨거운 마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주시는 불길은 진정한 행복을 위한 선택과 그 선택에 헌신하는 열정이다. 예수님의 평화는 무사안일한 평온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완고함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는 역동적인 평화였다.
이 평화에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으니, 자신(Ego)이 중심에 서있으려는 완고한 본능을 버려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이루려는 야망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그 불가피한 절연이나 떠남이 그 순간에는 아플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치유를 가져오는 뜨거운 불길이다. 자기중심적 완고함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치유가 일어난다. 그러기에 이 불길이 "이미 타올랐더라면 얼마나 좋으랴?"라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하면 일시적 위로의 진통제나 세상과의 타협이라는 설탕물을 선택하지 않고, 악의 세력과 대결하여 수술을 받을 수 있을까? 예수님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의 열정을 되찾고, 분열을 일으키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도 올바로 식별하고 선택할 때 우리에게 새 세상이 열린다. 이를 두고 히브리서(둘째 독서)는 이렇게 선포한다.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히브 12,1-2)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