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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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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일 다해 - 평화를 빕니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5-07-07 09:28   조회: 146회

본문

연중 제14주일 다해 - 평화를 빕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평화를 갈망한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평화를 축원하는 말씀이다. 첫 독서는 주님이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라고 약속한다. 둘째 독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와 자비가 내리기를 빕니다.”라고 기도한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라고 이르신다. 사람들은 평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평화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여러 이론을 세우고, 다양한 방법을 주장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평화의 정의나 방법을 설명하지 않으신다. 그 대신, 단순하게 평화를 빌어주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평화를 빌어주는 행위 자체가 복음 선포의 시작이며, 참된 평화로 나아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한 인디언 추장이 손자에게 인생을 가르쳤다. "인생은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큰 싸움이란다." 손자가 그 싸움이 어떤 싸움이냐고 묻자 추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모두의 속에서 일어나는 이 싸움은 두 늑대 간의 싸움이지.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서 그놈이 가진 것은 분노,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인데 그가 가진 것들은 평화, 기쁨,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진실, 그리고 믿음이지."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하고 묻자, 추장은 간단하게 답하였다.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중세의 신비가 마이스터 엑크하르트는 우리 안에 성인의 씨앗과 악인의 씨앗이 함께 들어 있다고 가르쳤다. 사람에게 축복의 말을 건네면, 그 말은 성인의 씨앗을 틔워 생명과 거룩함으로 자라게 한다. 반대로 저주나 위협의 말을 건네면 악인의 씨앗이 자라나 죽음과 어둠으로 사람을 이끈다. 복음 말씀대로, 평화를 빌어주는 말은 사람을 성인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90년대 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 사건이 발생했다. 20대 초반의 6명의 범인들은 "돈 있고 빽 있는 자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죽인다"는 행동 강령을 정하고, 10억을 목표로 다섯 명을 살해했다. 그런데 주범 김기환의 사연이 충격적이다. 그는 초등학생 때 학교서 미술시간에 크레파스 가져오라고 했지만, 너무도 가난해서 준비할 수 없었다. 빈손으로 가는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담임선생님은 "그것도 못 가져오냐? 훔쳐서라도 가져오라"라고 야단쳤다고 한다. 선생님 말씀을 절대적으로 따르던 이 순박하고 가난한 아이는 "훔쳐서라도 가져오라"는 말에 거침없이 도둑질을 시작하였고, 결국 살인자가 되었다. 한 마디의 저주가 악의 씨앗을 싹 틔우고, 그 악에게 계속 먹이를 준 결과가 지존파 사건이라는 희대의 살인사건을 초래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사형을 당하기 전 세례를 받았으며, 그들을 검거한 고병천 형사가 대부를 섰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다리가 많은데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 1달러의 통행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날, 혹은 특별하지 않은 날에도 가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톨게이트에서 어떤 기분 좋은 운전자가 2달러를 내면서 내 뒷사람 것까지요하고 가면, 징수원이 뒤차 운전자에게 앞차가 내고 갔어요라고 말한다. 뒤차 운전자는 자신이 준비했던 1달러를 내면서 그럼 이건 내 뒷사람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때로는 하루 종일 내 뒷사람 겁니다가 이어진다고 한다. 한 사람이 시작한 선의가 릴레이식으로 다음 사람에게 전달된다. 똑같이 1달러를 내면서도 내야 하는 통행세가 아니라 누구에겐가 선물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 뒷사람 겁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마다 얼굴에 밝은 미소를 짓는다고 한다. 고 장영희 교수는 이 일화를 전하며 진 켄워드의 시로 그 의미를 정리한다. "이웃의 짐을 나누어 들고 함께 길을 찾고 / 당신의 작은 재능이라도 이 세상을 응원하는 데 보태는 것 / 그게 바로 새해 복을 받고 복을 주는 겁니다.”

 

누구에게 먹이를 줄 것인가? 분노와 좌절과 복수심에 먹이를 주면 살인자가 될 것이다. 1달러의 작은 축복에 먹이를 주면 감사와 평화를 누리게 된다. 주님의 말씀대로 "평화를 빌어 주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평화의 먹이를 주는 축복이다. 레이첼 나오미 레멘은 평화의 축복이 지닌 효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축복할 때 물을 먹은 새싹이 자라듯 우리의 삶 역시 성장한다. 삶을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병들거나 늙으면 축복의 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연륜 때문에 축복할 힘이 더 생긴다. 축복은 단순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만남의 순간이다. 평화의 축복을 나누며 함께 한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평화를 빌어주며 서로를 섬기는 사람들은 깊은 유대 속에서 서로가 힘을 얻는다. 권태와 공허와 외로움을 극복하고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고, 축복받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느끼게 된다. '주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알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세상은 살만하다. 서로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 알아주는 것이고, 그것이 평화를 빌어주는 것으로 세상을 새롭게 살리는 길이자 복음 선포의 출발점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언제든 누구든 평화를 빌어줄 수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따뜻한 전화 한 통, 힘들어 지쳤을 때 어깨 한번 두드려 주는 일,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하는 노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일, 떨어진 책을 집어주는 일, 따스한 미소나 눈 인사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평화를 빌어주는 일이다. 그 사소해 보이는 작은 일이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일이다. 그렇게 평화를 빌어주면 우리에게 평화와 자비가 내린다. "평화를 빕니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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