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간 금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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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간 금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복음)
마태오는 세관에 "앉아있었다."
'앉아 있음'은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그저 잘 먹고 잘 살려고 주저앉은 인생의 상징으로 들린다.
그런데 지나가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는 "일어난다."
성경 원문에 의하면 "일어나다"라는 표현은 "부활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응답함으로써 주저앉은 현실로부터 부활한다는 의미다.
복음 말씀에 비추어, 마태오처럼 현실의 굴레에 묶여 앉아있는 우리 모습을 본다.
마음은 병들고 몸은 과로에 지쳐 마비되는 줄도 모르고 먹고살기 급급한 모습이다.
하느님이 만드신 본래의 사람다움을 꿈꾸기 힘든 삶의 현실, 그곳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앉아있던 죄인을 일으키시고, 형제로 대하여 음식까지 나누는 주님께 바리사이들이 저항한다.
자신을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틀 밖에 계신 주님 자비에 거부하고 저항한다.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 않는 모습이다.
자신이 잘났다고 착각하며 주저 않는 이들을 보시며 예수님은 오늘 다시 자비로이 이르신다: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세관 앞을 지나시다가 마태오를 바라보셨습니다.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의 눈길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수님께서는 죄인이며 세리인 그를 뽑아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로 삼으셨습니다.
베다 성인은 이 복음 구절을 설명하면서,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자비로운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고 그를 선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 - 성 베다, 강론집, 21)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아
저는 이를 제 문장(紋章)에 넣었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자비의 얼굴, 8항)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