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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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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성혈 대축일 (다해)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5-06-23 08:41   조회: 152회

본문

성체 성혈 대축일 (다해)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인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전한다. 주님은 우리의 굶주림을 외면하지 않고 먹여 살리는 분임을 일러주는 말씀이다. 물질적 가난과 육체적 병고에 더해, 정신적 갈증과 마음의 허기가 가실 날이 없는 상황에서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지금 여기서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먹이시는지 살펴보자.

 

예수님 주변에 모인 군중은 말씀에 취해 떠날 줄 몰랐다. 날은 저물고 배도 고팠을 군중을 돌려보내자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이르신다. 그래서 제자들이 찾은 음식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다. 오천 명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그 음식을 손에 들고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어 주신다.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는" 것은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몸짓이다. 거기에 사람들을 먹일 비밀이 담겨있다. 초대교회에서 미사를 Eucharistia(감사제)라고 불렀다. Eucharistia"좋은, 행복한"(eu-)"은총"(charis)을 결합한 단어다. , 하느님이 주신 은총에 기뻐하며 감사드리는 것이 미사의 본래 의미다. 내 손의 빵 한 쪽, 생선 한 마리가 어떻게 주어졌는지 다시 알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 오천 명이 먹고 남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것이 미사요, 성체와 성혈 대축일의 의미다.

 

오천 명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처럼, 세상살이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내 수입, 내 능력 등을 보며 감사하기보다는 실망하거나 무기력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부족한 현실이지만 그 속에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다시 알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릴 때" 세상을 보는 내 눈이 새로워진다. 밥 한 그릇이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농부의 땀방울과 햇살과 바람과 장맛비와 아침 이슬과 별빛이 담겨있다. 이 모든 것이 거저 받은 선물임을 다시 보며 하늘을 우러러 감사를 드리면, 하느님과 통한 나의 마음은 이 축복을 이웃과 나누게 된다. 물고기와 빵만 아니라, 아픔이나 기쁨도 감사하며 나눌 때 기적이 일어난다. 오천 명이 배를 채우고 남았듯, 감사와 나눔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일어나게 한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크든 작든 삶의 결실을 나누며 살고, 어떤 사람은 나누지 못하고 인색하게 살아간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감사하는 마음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고 감사할 때 남들과 나누고, 거기서 모두 배불리 먹고 남는 잔치가 벌어진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지금 가진 것이 못마땅하여 불평불만 속에 살아간다. 나누지 못하고 탐욕을 움켜쥔 채 씩씩거리며 허덕이다가 빈손으로 죽어간다.

 

내 삶은 힘들고 고통스러울 뿐 감사할 일이 전혀 없다고 투덜대는 이들에게 탈무드는 이렇게 일러준다. "만일 다리를 한 쪽만 잘렸으면 하느님께 두 다리가 다 잘리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 만일 두 다리가 잘렸으면 하느님께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 만일 목이 부러져 버렸으면 그 뒤는 걱정할 일이 없음을 감사하라." 그렇다. "하느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 하늘을 향한 감사의 생각은 그 자체가 기도이다." (C. H. 스펄젼). 감사와 나눔은 그저 괜찮은 덕목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생명의 원리다.

 

첫 독서는 하느님의 사제 멜키체덱의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바치는 아브라함의 감사 이야기다. 둘째 독서는 감사제라고도 불렸던 성찬례의 설정 유래를 전한다. 그 핵심은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는 구절에 담겨있다. 감사 드림에 이어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는 주님의 명령에서 "기억 anamnesis"이란 단어는 과거 사건의 단순한 회상을 넘어서서 지금 여기서 그 사건이 재현됨을 의미한다. 감사와 나눔으로 일어난 성체 성사의 기적을 옛날 일로 회상하는데 머무르지 말고, 지금 우리가 예수님처럼 행하라는 말씀이다. 형식적인 예식의 반복이 아니라 주님이 행하신 감사와 나눔을 이제는 우리가 실행하라는 말씀이다.

 

바오로 사도는 둘쩨 독서에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라고 전한다. 감사와 나눔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완성되었듯, 지금은 우리가 감사와 나눔의 실천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살과 피를 내어주신 주님처럼, 우리가 가진 것을 내어주는 것이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때 때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여 지금 여기서 현존하시듯 우리도 부활의 삶을 살게 된다. 바오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성체성사에 담긴 이 신비를 계속하라고 당부하신다.

 

이렇듯 성체성사의 신비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차원에서 지속된다. 그러므로 이 신앙의 신비를 미사때마다 성체 축성 후 우리는 이렇게 외친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미래의 희망 차원),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며(과거의 기억 차원),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부활하여 현재 현존하시는 차원)."

 

복음은 다음 말씀으로 마무리된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재현되면, 우리 삶에서 은총은 차고 넘치리라는 말씀이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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