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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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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나해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4-04-29 09:50   조회: 2,141회

본문

부활 제5주일 나해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전한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 모습을 만들지 못하고(탈출 20, 4), 그 이름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탈출 20, 7). 그렇기에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은유를 통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은유는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도 해당하는 바, 지난 주일 복음은 목자와 양 떼의 은유로, 오늘은 농부와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은유로 우리와 주님의 관계를 전한다.

포도나무에 관한 은유는 구약성경부터 등장한다. 하느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포도밭을 가꾸듯 돌보셨다(이사 5.1 이하).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기대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이사 5, 3). 그렇게 망가진 포도밭을 하느님이 회복시켜 주시길 기도한다. "만군의 하느님, 제발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살피시고 이 포도나무를 찾아오소서," (시 80, 15) 이 이야기는 노예살이에서 구원해 주신 하느님을 거역하여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자유를 잃은 이스라엘 역사를 은유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 복음은 이 이야기가 실패로 끝난 과거가 아니라 하느님이 개입하시는 현재 이야기로 전환하는 기쁜 소식이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나는 참된 포도나무" (요한 15, 1)라고 선언하신다. 즉 열매 맺지 못하거나 신 포도나 달리던 옛날의 그냥 포도나무가 아닌, "참된 포도나무"라는 말씀이다. 참으로 놀랍게도 하느님은 아들 예수를 통해 이 땅에서 포도나무가 되셨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이 땅에 심어진 존재가 되게 하셨다. 그분이 포도나무속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요한은 복음서 첫머리에서 말한 바 있는 육화의 신비를 여기서 이런 방식으로 다시 적용한다. 이제 포도나무는 하느님이 사랑스럽게 굽어보시다가 때로는 뽑아내실 수도 있고 때로는 내버리실 수도 있는 하찮은 피조물이 아니다. 하느님이 아드님을 통해 몸소 포도나무가 되신 것이다. … 이것은 하느님의 위대한 새로운 역사적 행보다. 이 점이 이 비유에 담긴 가장 깊은 내용이다. 육화와 죽음과 부활의 모든 의미가 여기에 드러난다." (라칭거).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참된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신앙인들이 예수님 안에 머문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15, 7), 우리가 청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약속도 주어진다(15, 7). 그러면 우리는 참된 제자로 성장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15, 8).

하지만 이 포도나무도 늘 가지치기를 해줘야 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라는 말씀에 담긴 뜻이다. 신앙생활에는 가지치기, 곧 정화가 필요하다. 정화는 고통스럽지만 필요하고, 삶을 통해 계속된다. 정화에는 언제나 죽음과 부활의 신비가 담겨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인간적 요소는 주님의 단순함과 가난으로 작아져야 한다. 이러한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만 그 풍요로움이 계속되고 새로워질 수 있다. 정화와 열매 맺기는 늘 함께 다닌다. 우리도 하느님의 가지치기를 통해서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상태를 예수님은 "머무르다"라고 표현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복음에서 '머무르다'라는 의미인 '메네인ménein'이라는 말이 열 번이나 나온다. 교부들은 이 단어를 'perseverantia'라고 옮겼다. "결단, 인내, 확고함, 지속" 등의 의미를 지닌 이 단어는 인생의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면서도 주님과의 일치를 유지하는 가운데 끈질기고 참을성 있게 버틴다는 뜻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신앙이나 구원에 열광하기가 쉽다. 그러나 열광 다음에는 지루한 광야의 여정이 이어진다. 이를 끈질기게 버텨내면서 참을성 있게 계속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첫 출발의 낭만은 사라지고, 깊고 순수한 믿음만이 살아남게 된다. 아우구스티노는 개종 초기에 그가 얻은 깨달음에 눈이 부셨다. 하지만 그다음에 그는 혼란과 미망에 시달리면서 인내의 고초를 깊이 체험했고, 그럼으로써 주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을 배웠으며 그분을 모시는 기쁨을 누렸다(라칭거). 이처럼 '머무름'은 믿음과 깊은 차원에서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머무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기도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15, 7)

예수님께 붙어있는 것, 예수님 안에 머무는 구체적인 길은 곧 사랑하는 것이다. 둘째 독서에서 요한은 이를 전한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은 끝으로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라고 이르신다. 우리가 맺는 열매는 어떻게 하느님께 영광이 될까? 어떤 사람이 신앙인이 되어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변화된 그 사람만 칭송하지 않고 '도대체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시기에, 저 사람이 저렇게 변화되었을까?' 하며 하느님을 칭송한다. 인간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우리 삶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때,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이루게 된다.

같은 돈을 벌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과,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목적 없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처럼 언젠가 시들기 마련이다. 넉넉한 보수나 편안한 가정이라는 열매를 누리더라도 결국 공허하고 우울한 가운데 인생이 시들어 말라버린다. 이와 달리 우리가 가지임을 알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사람, 사랑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수액을 취하듯 예수님의 사랑을 언제나 공급받는다. 그러면 나무의 수액이 가지에 퍼지듯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온 존재에 퍼지게 된다. 그렇게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 상태, 가지가 나무에 결합된 이 사랑의 합일 상태가 곧 영원한 생명이다. 그 생명으로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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