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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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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대축일 -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4-05-18 16:41   조회: 2,094회

본문

성령강림 대축일 -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


오늘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계시게 되었음을 기념하는 성령강림 대축일이다. 오늘 듣는 말씀들은 하느님의 영이자 예수님의 영인 성령이 어떻게 오시는지, 무엇을 위하여 오시는지, 누구에게 오시는지 일러준다.

첫 독서인 사도행전은 성령이 내려오는 장면을 이렇게 전한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성령은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러기에 눈에 보이는 상징의 형태로 그 의미를 전한다. 사도행전에서 전하는 바람, 불꽃, 혀 등의 상징이 성경에서 의미하는 것을 통해 성령 강림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

먼저 성령은 "바람"처럼 오신다. "바람"은 성경에서 "숨"을 의미하고 "숨"은 "숨 쉬는 이의 영"을 상징한다. 창세기에서 진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하느님이 숨을 불어넣자 생명을 가지듯, 하느님의 영으로 생명이 시작된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을 받아라."라고 이르신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의 숨은 죽음에서 우리를 살리는 성령이다. 삶이 생기를 잃고 숨이 막힐 듯 힘이 들고, 세상사가 기가 막힐 듯 갑갑하다면, 하느님의 숨이자 예수님의 기운인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은 "불꽃"의 모습으로 오신다. 성경에서 불꽃은 모든 것을 정화하는 힘이자 어둠을 밝히는 빛이고 따뜻한 사랑을 상징한다. 과학 기술은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했다지만 사람들은 제 생각만 하며 냉기가 흐르는 야박한 세상이다. 저 살자고 남 죽이려는 거짓과 험담과 혐오로 가득한 채 부끄러움조차 잊어버렸다. 이 어둡고 냉혹하고 더러운 곳을 따뜻하게 밝히고 깨끗이 씻어줄 불꽃이 필요하다. 춥고 어두운 세상에 서로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며 환하게 빛나는 사랑의 불꽃으로 성령께서 오시기를 간청하자.

바람과 불꽃에 이어 성령은 "혀"의 모양으로 오신다. 말할 때 사용하는 신체 기관인 혀는 성경에서 말씀을 상징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 분이 예수님이다. 혀의 모양으로 오신 성령은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리스도의 영이기에 성령은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그러기에 주님은 "진리의 영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며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요한 16, 13-15)이라고 말씀하셨다. 참으로 말이 많은 세상이다. 말로써 용기를 주는가 하면, 상처를 주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말 많은 세상에서 무엇이 나의 삶을 구원하는 말씀일까? 성령께서 늘 우리에게 오시어 거짓말이 아닌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고, 혐오나 모욕이 아닌 사랑의 말을 나누도록 간청하자.

성령이 오시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말씀을 전하는데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고 한다. 소통의 놀라움이 성령 강림의 결과였다. 불통의 세상이다. 젊은이들이 쓰는 말을 노인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아내의 한탄을 남편이 알아듣지 못한다. 한쪽에서는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쪽에서는 조용히 하라고 입을 틀어막는다. 자기 말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는 불통의 세상일수록 소통을 이루는 성령께 귀 기울여야 한다.

서로의 말을 알아듣는 성령강림의 기적은 오늘날 어떻게 계속될까?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중심적 입장에서 판단하면 상대방은 타인이 되고, 적대감이 생긴다. 나와 다른 상대방은 결국 나의 적으로 무찌를 대상이 된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다. 타인이 적인 한 용서는 불가능하다(R. 과르디니). 자기중심적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열면 성령이 오신다. 열린 마음을 통해 성령이 오시면 나와 다른 상대는 무찌를 적이 아니라 나와 같은 성령이 머무는 형제로 보인다. 그때 부족한 점을 서로 용서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이르신다.

성령의 활동을 두고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라고 전한다. 이 말씀을 치릴로 성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성령은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다. 언제나 같은 형태로 내려오지만, 논에 떨어지면 벼를 튼튼히 자라게 하고 밭에 내려서는 야채를 키우고, 산에 내린 비는 숲과 나무를 자라게 하고 강과 바다로 내린 비는 물고기를 자라게 하듯, 성령께서는 우리 각자를 서로 다르지만 제 모습대로 자라나서 한 생명 안에 엮어준다. 어떤 이에게는 자비심을, 어떤 이에게는 용기를, 어떤 이에게는 절제를, 어떤 이에게는 지혜를 각기 필요한 만큼 주신다."

그렇게 주신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에 바오로는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주십니다."라고 일러준다. 서로 다른 각자의 역할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 예수님이 나타나셨다고 오늘 복음은 전한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을 때" 성령이 강림하셨다고 전한다. 성령은 함께 있을 때 모두를 위해 강림하신다. 나만을 위한 성령 강림은 없다. 자기만을 위해서 내 힘으로 애써서 혼자 잘 살아보려는 이에게 성령은 오시지 않는다.

이제 성령께서 오시길 기도하자. 우리에게 오시어 세상에 가득 찬 적대감을 불길로 태우시고, 두렵고 부끄러운 세상의 죄악을 세찬 바람으로 쓸어버리고, 죽어가는 것들에게 주님의 숨을 불어넣고, 불통의 세상을 혀와 같은 말씀으로 소통시켜 주시길 기도하자.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만나는 나와 다른 이들도 내가 이기기 위해 무찌를 적이 아니라 주님 안에 한 형제이기에, 성령의 힘으로 서로를 받아주고 용서할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주님,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 (화답송)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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