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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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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일 나해 -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4-06-24 09:24   조회: 1,868회

본문

연중 제12주일 나해 -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복음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돌풍과 거센 파도를 만난 위기 상황을 전한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맞닥트렸던 실제 사건이자, 동시에 개인이나 교회의 삶을 상징한다. 어두운 밤에 풍랑이 거센 호수를 작은 배로 건너가야 하듯, 위험한 상황을 겪으며 살아가는 인생이나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지 복음 말씀을 통해 살펴보자.

사건이 벌어진 때는 저녁이었다. 밤으로 이어지는 저녁은 성경에서 악마가 준동하는 어둠의 시간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무신다. 거센 바람과 파도 속에 베개까지 베고, 즉 작정하고 주무시는 모습이 의아하다. 성경에서 잠은 하느님 손안에서 누리는 평온을 상징한다. 풍랑에 흔들리는 배에서 주무시는 모습은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로 어린이처럼 아버지 품에 안기신 모습으로 보인다. 삶의 거센 풍랑을 이겨낼 길을 암시한다. 힘들수록 불안에 떨지 말고 하느님 품 안에 머물라는 초대다.

흔들리는 배에서 제자들은 불안해한다. 예수님이 제자들 곁에 계셨지만, 제자들은 자기들끼리만 있다고 생각한 결과다. 곤경에 빠질 때, 삶의 거센 바람과 폭풍이 덮칠 때, 영혼이 암흑에 빠져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예수님이 안 계신 채 홀로 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온 신자도 위기가 닥치면 불안에 빠진다. 성경 말씀도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하고, 미사에 참여해도 기쁨 없이 분심만 든다. 주님이 자신을 버리셨다고 생각하여 불안해한다. 홀로된 불안을 이기지 못하여 엉뚱한 일에 몰입한다. 지나친 운동이나 취미나 모임이나 술에 빠지고, 급하면 점집 등 미신 행위나 다른 신을 찾아 방황하기도 한다.

제자들은 불안에 떨다가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습니까?"라고 예수님께 항의한다. 그리스어 원문에 따르면 "죽게 되었다"라는 단어는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예수님이 악령을 쫓으시자 악령들이 "우리를 없애러 오셨습니까?"(마르 1, 24)라고 항의할 때 사용한 단어다. 죽을 지경에 놓였는데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예수님께 '우리를 없앨 작정이냐?' 하고 격하게 따지는 모습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 답변도 하지 않으시고, 다만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라고 명하신다. 바다와 풍랑은 인간의 명령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인간이 지시할 대상도 아니다. 자연과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만이 명령하고 다스리실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고 한다. 예수님 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계셨다. 예수님 안에 세상을 만드시고 주재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담겨 있었다.

풍랑이 가라앉고 평온을 되찾자, 제자들의 거친 항의에 아무 대꾸도 없으시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폭풍우 앞에 항의만 하거나 파도가 평온해진 상황에 안도만 할 것 아니라, 그 사건의 원인과 과정을 성찰하라는 초대로 들린다. 바람에도 흔들리던 자신이 누구고, 풍랑에게 명령하시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세상을 살아가며 마주치는 삶의 역경과 풍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참된 평화가 어디서 오는지 깨닫도록 이끄시는 질문이다.

“왜 겁을 내느냐?"라는 예수님의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보자. 제자들은 물에 빠져 죽을 듯한 상황이 불안해서 겁을 내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아랍 속담이 있다(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인간을 항상 불신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하고 파멸로 이끄는 근본 원인은 외적인 풍랑보다도 내적인 불안이다. 아기는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불안하기에(분리불안) 울고 떼를 쓴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미래가 불안하기에 방황하고 저항한다. 갱년기에는 나이 먹는 것이 불안하여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 노화와 죽음이 불안한 노년기에는 쉽게 노여워하거나 불필요한 고집을 부린다. 신앙에 확신이 없어 불안한 이들은 냉담을 한다. 문제는 불안에서 나온 일탈행위가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고 더 큰 불안, 더 큰 어둠, 더 큰 폭풍으로 우리를 끌고 가서 끝내 파멸로 이끄는 점이다.

불안을 초래하는 악령, 폭풍과 집어삼킬 듯한 파도는 한밤중에, 곧 예상치 못한 때에 닥친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풍파가 없는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이 아니라, 풍파 한가운데서도 현존하시는 하느님이다. 그리스도교는 폭풍우 없는 인생을 보장하는 종교가 아니라, 어둠과 거센 폭풍 속에 계신 주님을 만나는 종교이다. 복음에서 드러났듯 풍랑을 잠재우실 우주의 주인은 예수님이다. 첫 독서인 욥기에서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듯, 바다를 만드신 하느님은 이제 예수님 안에 계신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지 못하여 빠져드는 불안, 내 영혼을 잠식하고 파멸시키는 불안을 떨쳐버리려면 엉뚱한 곳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예수님을 찾을 때다.

그 예수님이 어디 계시는가? 제자들과 함께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시다. 예수님을 찾아 멀리 갈 필요는 없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계시다. 우리 집안에 계시고, 우리 공동체 안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신 분다. 그분을 만나려면 내 안으로 들어갈 일이다. 살려달라고 하소연하든, 나를 죽일 작정이냐고 거칠게 항의하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불안할수록, 그래서 주님이 계시지 않는 듯 신앙마저 흔들릴수록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주님은 내 안에서 나지막하게 물으실 것이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불안한가? 마음 깊은 곳에서 “왜 겁을 내느냐?"라는 예수님의 물음을 마주하자. 이어지는 말씀인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는 물음에 불안을 넘어설 길이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의 현존을 믿지 못해 겁을 내었다. 폭풍 속에서도 그지없이 평온하게 하느님께 의탁하고 계신 예수님의 믿음을 보며, 우리도 믿음을 새롭게 하자. 예수님처럼 아버지께 신뢰할 때 불안이 평온으로 바뀌고, 그때 나의 밖에서 몰아치던 폭풍과 파도가 가라앉을 것이다. 그렇게 삶에서 덮치는 폭풍과 어둠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그 속에서 예수님을 찾고 믿음을 새롭게 하면 새로운 세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제2독서)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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