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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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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대축일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4-08-16 09:31   조회: 1,5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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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대축일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


오늘은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에 올려짐을 받았다는 의미의 ‘성모몽소승천(蒙召昇天 Assumptio) 대축일’이다. 전승에 근거하는 축일의 역사성 등을 떠나, 성경에서 들려주시는 메시지를 살펴보자. 복음은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사건을 전한다.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라는 엘리사벳의 인사에 담겼듯 두 여인의 만남은 기쁨과 축복과 찬미의 만남이었다. 이에 마리아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다. 하느님의 자비로 사람들의 운명이 바뀐다는 노래다. 이 세상에는 권세 부리는 이와 부요한 이가 있고 비천한 이와 굶주리는 이가 있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나타나면 이들의 운명이 역전된다고 마리아는 노래한다. 하느님의 자비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차별을 철폐하신다는 것이다.

이 찬미가에 마리아가 하늘에 오르신 비밀이 담겨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라는 구절에서 ‘영혼’은 구약의 ‘네페쉬’, 신약의 ‘프시케’의 번역이다. 본래 ‘목구멍’을 지칭한 단어 네페쉬는 성경에서 “숨,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의미한다. “하느님께서…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라는 말씀에서 드러나듯, 사람은 하느님이 불어넣어 주시는 숨으로 살아가고,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양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다. 마리아는 자신이 하느님 없이 숨 쉬지 못하고, 하느님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영혼임을 노래한다. 실제로 마리아는 하느님께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자신을 주님께 바쳐드렸다.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이니, 하느님 숨으로 살아있는 영혼이 되라는 초대다.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라는 구절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돌보심을 받는 사람, 당신의 숨결을 살아가는 사람의 행복을 노래한다. 이어서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우리 말로 ‘큰일’이란 ‘중요한 일’ 정도의 의미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 "큰일"은 하느님이 행하신 ‘엄청난 일’을 의미했다. 즉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일(신명 10,21), 바빌론 유배에서 해방시키신 일(예레 33,3)이 "큰일'이었다. 마리아가 ‘나에게 큰일을 하셨다’는 말은, 이러한 엄청난 일이 자신을 통해 일어났다는 뜻이다. 종살이에서의 해방이나 유배지에서의 귀환보다 더 큰, 엄청난 일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강생이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큰일, 엄청난 사건인 구원은 가치의 전복을 불러온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강생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그 세상에서는 교만한 자, 권세 있는 자, 부유한 자들이 내쳐지고 보잘것없는 이, 비천한 이, 굶주린 이들은 높아질 것이다. 신앙인은 새로운 세상에 희망을 두는 이들, 전환을 믿는 이들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시골 처녀 마리아의 믿음을 통해 하느님은 이 큰일, 전환을 이루신다.

찬미가는 이렇게 이어진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하느님으로부터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22,17-18)라는 말씀을 들었었다. 하느님이 베푸시는 자비, 세상이 바뀌는 큰일인 구원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민족들"에게 확대된다. 하느님은 유대인만의 하느님이 아니었다. 마리아의 노래는 단순히 개인의 노래가 아니다. 하느님 백성 전체에 내리는 구원을 전하기에, 우리 모두의 노래가 된다. 이처럼 성모님의 찬미가는 하느님의 자비가 온 세상의 운명을 바꿀 것이라는 희망과 신앙을 노래한다.

복음서 전체는 비천한 이들, 굶주린 이들, 차별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된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교회도 복음서의 정신을 이어받아 사람들이 어려움 속에 희망을 잃을 때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한다. 4세기 이래 전승되어오던 성모님의 승천에 대한 교리는 1950년 11월 1일에 선포되었다. 19세기 들어서면서 서구에는 세상은 자체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조가 만연했다. 하느님은 인류 역사 안에 계시하시지도 않고 개입하지도, 섭리하지도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20세기 전반부에 인류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렀다. 일본 제국주의와 독일 나치즘에 의해 1200만 명이 사망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강제 징용이나 위안부 등 일제에 의해 희생된 이들이 확인된 명단만 24만 명이었다. 이처럼 세상은 전쟁의 폐해와 인간의 잔혹함을 똑똑히 보았다. 인류의 미래는 없는 것 같이 보였다. 생명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인류는 쓰레기와 같이 비하되었다. 교회는 이렇게 파멸된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들어 높여야 했다. 인간의 미래는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을 천명해야 했다. 성모님의 승천 축일 교리는 이 상황에서 인간 존엄성이 하늘에 오를 수 있고, 인간 운명이 하느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가르침이었다. 신비롭게도 36년 동안 우리 민족과 인류를 괴롭힌 일제가 항복을 선언한 날이 바로 4세기 이래 기념해 온, 희망의 날인 성모승천 축일이었다.

오늘날도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당하고 있다. 이념과 세대와 빈부의 격차 속에 차별과 반목이 극을 달리는 가운데, 노력에 비해 대가가 보장되지 않는 불공평한 사회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실행하기에 온갖 범죄와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마리아의 노래’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것이라는 희망과 신앙을 새로 하라는 초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병들고 늙어서 살기가 아무리 힘들고, 사회가 너무도 비뚤어져 근심이 많더라도, 우리의 비천함을 하느님이 굽어보시고 당신 팔로 권능을 펼치신다는 희망과 기쁨을 노래하자. 성모님이 하늘에 올라 하느님 안에서 그 생애의 종말을 맞이하였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완성되는 삶을 살겠다고 믿음을 새롭게 하며 하느님을 찬미하자.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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