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화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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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화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마르타의 항의는 동생 마리아와 자신을 비교하는 데서 출발한다.
"비교는 불행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하는 주님이 내 집에 오셔서 기쁘고, 그분만 보고 시중을 들었다면 그저 감사할 텐데,
사랑하는 분에서 동생으로 눈길이 이동하고 동생과 자신을 비교하니 분노와 항의가 올라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사람들은 대개 현실은 마르타처럼 살면서도 이상은 마리아를 꿈꾼다.
마르타처럼 분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고요히 말씀을 듣는 마리아를 부러워한다.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몫"의 본질은 무엇일까?
분주한 활동이 아닌 고요한 기도가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몫일까?
복음에서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는 것은 루카복음서에서 제자의 자세를 가리킨다(8, 35; 사도 22, 3 참조).
제자란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자신이 아니라 스승에게 맡기고 스승을 따르는 사람이다.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몫"의 핵심은 '자기 일'로부터 '주님의 현존'으로 중심이동이었다.
자기 자신이 그 중심에 있는 한, 자신의 몫에 대한 욕망이 올라오고,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게 된다.
그 상황은 분주하게 일을 하든 기도에 전념하든 좋은 몫이 아니다.
일에 바쁘든, 일 없이 한가하든, 주님 발치에 머무르려는 중심이동,
자기 일이나 자기 말이 아닌 주님 아래서 주님 말씀을 듣는 것이 마리아의 선택이었다.
그것이 참 행복을 살아가는 몫이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몫"이었다.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이가 당신의 말씀을 들으며 당신 발치에 머무르는 모습은 주님에게 기쁨이다.
이 기쁨을 주는 주님께 대한 마리아의 사랑과, 마리아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빼앗을 자는 없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니까.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