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나해 -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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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일 나해 -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전쟁에 나갈 땐 한 번 기도하라. 바다에 나갈 땐 두 번 기도하라. 그리고 결혼할 땐 세 번 기도하라."라는 러시아 격언이 있다.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보다도, 모든 것을 삼키는 바다의 풍랑보다도 결혼생활이 더 위험하고 힘들다는 뜻의 격언이다. 오늘 들은 성경 말씀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 혼인과 이혼에 관한 해석 등 인간관계에 관한 말씀이다.
첫 독서는 남자 여자의 창조 이야기다. 하느님이 만드신 아담이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혼자 살 수 없는 남자를 보시고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셨다."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표현을 두고 여자가 남자의 부속물이라고 해석한 적도 있지만 이는 성경에 관한 무지의 소산이다. 성경에서 갈비뼈는 생명의 핵심인 심장을 보호하며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듣는 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심장을 보호하고 상대방의 심장 고동을 듣는 동등한 존재라는 뜻이다. 이렇듯 성경 말씀은 여자가 남자의 보조역이 아니라 "협력자"임을 일러준다. 여성과 남성은 어느 쪽도 우월한 지배자가 아니라 같은 존엄성을 지닌 존재다. 아담이 하와를 두고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라고 고백하였듯, 부부는 같은 기원에서 나왔기에 하나가 되어 서로를 살리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
그러나 창조하신 모습대로 부부가 하나가 되기는 어려웠다. 복음에서는 바리사이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라며 이혼을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남성 중심의 모세 시대에는 남자들이 혼인을 빌미로 여자들을 잡아 두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모세는 이렇게 학대 당하는 여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이혼법을 마련하였다. 후대에 이 약자 보호 규정을 악용하여 남자들이 조강지처를 버리는 구실로 삼았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들에게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라고 지적하신다.
예수님은 약자를 존중하는 모세법의 본래 정신에서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라는 말씀으로 혼인의 본질을 일러주신다. 혼인이 남자 여자의 개인적인 일(俗事)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일인 성사(聖事)라는 말씀이다. 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이 보이게 드러난 표지다. 부부 관계가 당사자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이라는 선언은, 부부가 이루는 가정이 단순한 서식처가 아니라 하느님이 계신 곳이요, 부부의 사랑은 일시적 감성의 표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이게 드러내는 성사라는 말씀이다.
남자 여자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는 성사적이다. 즉 하느님이 드러나는 관계다. 둘째 독서는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라고 전한다. 인간을 하느님 자녀로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통해 거룩해지는 인간은 하느님이라는 동일한 기원을 갖는다는 말씀이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히브 2,11) 즉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형제가 된 이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분명히 이르신다. "너희는 모두 형제다."(마태 23,8)
오늘날 온 세계가 전쟁터다. 하루도 예외 없이 외국에서 벌어지는 폭격과 사망 소식을 듣는다. 국내도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은 일상이 전쟁이다. 영국의 전문 기관(킹스칼리지 런던정책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2020년)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압도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갈등이 심한 나라’로 꼽혔다. 빈부, 이념, 정당, 종교, 세대, 성별, 학력 영역에서 한국은 갈등과 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라는 결과다. 그 근본 원인은 서로가 경쟁하는 가운데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 암담하고 절망적인 세상에 희망이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4년 전 세상이 겪는 이 모든 어둠에 대한 답으로 "모든 형제들"이라는 회칙을 발표하였다. 어둠 가득한 세상을 바꿀 길은 모든 이가 형제라는 의식의 전환밖에 없다는 호소를 담은 사회 회칙이다. 나와 다르고, 이해하기 힘든 이들까지 세상 사람 모두가 한 하느님이 창조하신 존재이기에 모두 한 형제고, 그렇게 형제로 상호 존중할 때라야 정쟁이 멈추고 평화가 가능하다는 선언이었다.
회칙 "모든 형제들"은 형제애들 드러내는 표지로 상호 존중을 강조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흔히 공감, 소통, 배려, 사랑, 우정, 신뢰 등을 꼽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존중’이다. 존중(respect) 없는 형제애는 말뿐인 위선이다. 존중 없는 공감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이고, 존중 없는 소통은 속빈 강정이며, 존중 없는 사랑은 일방적인 집착이다. 신앙인에게 존중이란 상대방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밤이 언제 끝나고 낮이 언제 시작된다고 생각하느냐?" 한 제자가 대답했다. "멀리서 한 마리의 동물을 보았을 때, 그것이 양인지 개인지 구별할 수 있을 때입니다." 스승이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했다. 다른 제자가 대답했다. "멀리서 나무를 보았을 때, 그것이 밤나무인지 복숭아나무인지 구별할 수 있을 때입니다." 역시 스승은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했다. 제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대체 그것이 어느 때입니까?" "너희가 사람의 얼굴을 보고 너희의 형제인지 자매인지를 알 수 있을 때이다. 이것을 구별할 수 없다면, 아직도 깊은 밤에 머물러 있는 것이야." (탈무드)
언제 어두운 세상이 지나고 밝고 행복한 날이 시작될까? 상대방이 형제로 보여 그를 존중할 때이다. 무능한데다 고집불통인 남편이나 아내가 하느님이 맺어주신 내 협조자로 보여 나를 존중할 때,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자녀가 내 소유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 보여 존중할 때, 많이 갖지 못해서 배우지 못해서 차별받는 이들이 열등아가 아니라 형제자매로 보여 존중할 때, 밤이 지나고 낮이 시작되듯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서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리라." (1요한 4,12: 복음환호송)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