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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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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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순교를 기념하는 성인들은 주교, 사제, 신학생, 궁녀, 과부, 동정녀, 소년, 노인, 정부 관리, 양반, 백정 등 참으로 다양한 계층의 분들이다. 무엇이 이렇게 다양한 계층의 신자들을 갖은 고난을 이겨내고 순교로 이끌었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라고 이르신다. 성인들은 복음 말씀대로 예수님 때문에 자신을 버린 분들이다.
"자신을 버린다."라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자신을 버리다'"의 그리스어 원문 "aparneisthai"는 "'아니오'라고 말하다, 거절하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에 바로 이어서 말씀하신 문맥을 고려하면 그 뜻이 잘 드러난다. 즉 예수님을 따르고는 싶지만 수난과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자기 보존 본능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곧 "자기를 버리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자기를 버린다는 말 뜻은 이처럼 단순히 욕심을 버리거나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 아니고, 자기 부정이나 자학, 혹은 자기 폄하를 통해 자존감을 없애라는 권고도 아니다. 예수님은 좋지만 희생은 싫다고, 구원은 감사하지만 죽지는 않겠다고, 어떻게 하든 잘 살아 보자고 속삭이는 자기 보존 본능에 "아니오" 하라는 말씀이다.
사람이나 동물이 지닌 가장 근본적인 본능은 자기 보존 본능이라고 한다. 살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하고자 한다. 단순한 생존 문제뿐 아니라 하느님을 따르는 길에서도 자기보존본능이 나타난다. 불안에 찬 자기보존 본능은 자신을 위해 하느님까지 이용하려고 한다. 자신을 버리라는 예수님 말씀은 주님을 따르려면 이러한 본능에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저항하라는 말씀이다. 자신을 위해 하느님을 소유하고, 항상 잘 되기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고 싶은 영혼의 자기중심적 성향에 "No!"를 외칠 때 자기중심적 에고(Ego)와 거리가 생기고 그 틈으로 하느님이 보인다.
그러기에 자신을 버리라는 말씀은 세상의 주인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신이 아니고,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이다. 살기 위해 자신에게 매달리지 말고, 자신을 떠나 자기를 만드신 하느님과 하나가 되라는 기쁜 소식이다. 한국의 순교자들이 바로 자기만 위해 살려는 본능에 "아니오"를 외치고, 자신이 아닌 주님을 따른 분들이다. 이분들은 어떻게 "아니오"를 외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자기를 버릴 수 있었을까? H. U. Balthasar는 동서고금의 모든 순교자들 삶을 고찰하여 공통점을 찾아낸다. 그 공통점은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삶에의 진지함"이었다.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진정성이 없을 때 인간관계가 힘들어진다.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이 힘든 까닭은 해야 할 일들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의 진실하지 못한 말이나 행동에서 느끼는 실망감과 피곤함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김 대건 성인과 한국 순교자들이 공통적으로 진지함, 즉 진정성을 지니신 분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진지함의 내용이다. 순교자들이 보이신 공통된 진지함은 창조목적, 곧 하느님께서 나를 만드신 목적, 내가 세상을 살아갈 이유에 대한 진지함이었다. 그 창조목적은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모든 순교자들이 배운 교리문답(로마 교리서, 1566년 발행) 1번에 나타난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느니라."
첫 번째에 이 문답이 위치한 이유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첫째 가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느님을 찬미하는 데 도움이 되면 그만큼 열심히 하고 아니면 멀리할 때 삶의 질서가 잡히고, 그렇게 창조목적에 부합하는 삶이 반복될 우리는 비록 목숨은 바치지 못할지라도 순교자와 한 가지로 하느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된다. 김 대건 신부님의 편지 안에서 그분의 삶과 죽음을 관통한 원리와 기초가 바로 위의 교리서 1번 문답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김대건 신부님은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남아있는 교우들에게 유언처럼 이렇게 호소하신다. "천주께서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창조주와 그 뜻을 생각할지어다. ...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지 않겠는가?“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