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원가입  |   로그인  |   오시는 길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말씀의 숲
영성의 향기 말씀의 향기 수도원 풍경 세상.교회의 풍경 기도자리
말씀의 향기

주님 세례 축일 -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6-01-11 11:24   조회: 12회

본문

주님 세례 축일 -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오늘은 성탄 시기가 끝나는 주님 세례 축일이다. 성탄 시기는 예수님이 세상에 드러나는 신비를 묵상하는 때다. 성탄에는 마리아와 요셉과 목동들에게 예수님이 드러나셨고, 공현에는 동방박사들을 통해 온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나셨다.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하는 오늘은 하느님이 직접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예수님을 드러내신다.


​이는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들려온 말씀이다. 요한의 세례는 죄 사함을 위한 예식이었다. 사람들은 죄를 씻기 위해 죽음을 상징하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옴으로써, 죄에 대해 죽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죄인들 사이에 서서 세례를 받으셨을까? 이 사건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죄를 없애고, 죽음을 상징하는 물에서 나오듯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사건의 표징이자, 새로운 창조의 예표였다. 


​창세기에서 물은 혼돈을 상징했다. 그 위에 하느님의 숨, 곧 성령이 바람처럼 내려 세상이 창조되었다. 하느님은 이를 보시고 "좋다"고 말씀하셨다. 세상 창조 때 등장한 물과 성령과 하느님의 말씀, 이 세 요소가 예수님의 세례에서 동일하게 등장한다. 예수님이 요르단 강물에 들어가시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시며, 하늘에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이 들려온다. 이처럼 예수님의 세례는 죽음과 부활로 열릴 새 세상의 시작이며, 새로운 창조의 선언이다. 


​이 신비는 예수님께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받은 세례 안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물에 들어가셨듯, 우리도 세례수로 씻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 선언하셨듯,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 예수님 위에 내렸던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내려오셨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다. 세례를 통해 신앙인은 “그리스도와 합체된다.”(교회헌장 11) 곧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그 표징으로 우리는 새로운 이름을 받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게 된다.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창조되는 은총이다. 


​이 신비의 핵심은 ‘받아들여짐’에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자각”이라고 H. 나웬은 말한다. 세상의 단체는 대부분 특정한 조건을 채워야 사람들을 받아들인다. 취업을 하려면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고, 동창회에 가입하려면 같은 학교를 나와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세례 때 들려온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선언은 자격을 갖춘 이에게 주는 합격증이 아니다. "난 네가 무슨 공을 쌓았기에, 말을 잘 들어서, 공부를 잘해서, 착한 일을 해서 널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내 자식이기에 있는 그대로 너를 사랑한다. 네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든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라는 뜻이다(A. 그륀).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 체험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의 근원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받아 주셨다. 그것이 우리의 세례였다. 이제 인간은 인정받기 위해서 허덕이며 어떤 조건을 채워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를 받아주신 하느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느님의 아들, 딸로 받아들여진 이 세례에서, 사람이 하느님처럼 되는 길이 열린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인간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유한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성에 참여하는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께 아들딸로 받아들여졌다. 영원하신 하느님으로부터 아무 조건 없이, 영원에 이르기까지, 소중한 존재로, 사랑받는 존재로 거듭난 것이 우리의 세례였다.


​한 인디언 전설이 있다. 독수리의 알 하나가 닭장에 놓여 병아리들과 함께 부화되었다. 그 독수리는 자신을 닭이라 여기며 닭처럼 살았다. 씨앗을 쪼아 먹고, 푸드덕거리며 낮게 날았다. 몇 년이 지났다. 하루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높이 날고 있는 멋진 새를 보았다. 날개를 푸드덕거리지도 않으며 힘찬 바람을 타고 우아하게 높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정말 멋진 새구나!" 닭이 된 독수리가 감탄하며 옆에 있는 진짜 닭에게 물었다 "제게 무슨 새지?" "독수리야. 새의 왕이지." 닭이 대답했다. 그리고 독수리에게 충고하였다. "꿈도 꾸지 마. 넌 절대로 저렇게 될 수 없다고." 그 독수리는 끝내 닭장 안에서 생을 마쳤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본래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다. 그러나 무지와 탐욕으로 죄의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간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오셨고,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하셨다. 그런데도 여전히 열등감과 두려움 속에서 닭처럼 산다면, 자신의 존엄을 잊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존엄성을 잊어버린 채, 닭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닭으로 살 것인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해방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닭장 속의 닭도 아니고, 스스로 하늘을 날아야 할 독수리도 아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느님의 자녀다.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여진 존재다. 삶이 무겁고 어둠이 짙을 때, 폴 틸리히는 이렇게 고백하라고 가르친다. “그대는 받아들여졌다. 그대보다 더욱 위대하고 그대가 알지 못하는 이름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 미래에 대해 아무 근심도 하지 마라. 그저 단순히 그대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오늘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렸듯,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인간이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신비가 우리의 세례 안에 담겨 있음을 기억하자. 그때 예수님께 이르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말씀하신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출처] 말씀에

해뜨는 마을 l 영보자애원 l 영보 정신요양원 l 천안노인종합복지관
교황청 l 바티칸 뉴스 lCBCK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l 한국 천주교 주소록 l 수원교구
우. 13827 경기 과천시 문원청계길 56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56 MunwonCheonggyegill Gwachon-si Gyeonggi-do TEL : 02-502-3166   FAX : 02-502-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