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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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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인 대축일 - 행복하여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5-11-01 14:17   조회: 50회

본문

모든 성인 대축일 - 행복하여라,


성인이란 어떤 분들일까?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인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시성된 분들이지만, 오늘 첫 독서인 요한 묵시록에 따르면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다가 죽은 후 하느님 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분들이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에 관해 말씀하신다. 그들은 하늘나라를 차지하고,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곧 이들이 바로 성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의 원인은 세상의 통념과는 매우 다르다. 주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슬퍼하고, 온유하고,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랐으며, 자비롭고, 마음이 깨끗하고, 평화를 이루며, 당신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받기에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신다. 가난하면 불편하고 괴로운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이라는 단어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이나 기분 좋은 감정과는 다르다. “참 행복은 느낌이나 감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영과 생명을 나누는 상태를 의미한다.”(로버트 엘스버그, 『행복한 성인들』)


​가난한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이유는, 아무 데도 기댈 곳 없는 처지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께만 의탁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늘나라, 즉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받아들인다. 행복의 관건은 가난이나 부요함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다. 


“슬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도 같다. 그들은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세상적인 것에 기대지 않고, 하느님께 눈을 돌리기 때문이다. 주님의 위로보다 더 큰 위로는 없기 때문이다.


“온유한 사람”은 세상에서 손해만 볼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다. 그러므로 주님처럼 자신을 낮추는 온유한 사람은 주님을 만나는 행복을 누린다.


“자비로운 이”는 자비로우신 주님을 닮았기에 행복하고, 마음이 깨끗한 이는 맑은 눈으로 하느님을 뵙기에 행복하다. 

평화를 이루는 이는 참된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을 만나기에 행복하다.


​이렇듯 참된 행복은 자신의 능력이나 재산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에 자신을 내어 맡길 때 찾아온다. 성인들은 바로 그 행복을 누린 분들이다.


​행복은 삶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뒤에 오는 것이 아니다. 가난, 병약함, 노년의 슬픔, 가족 간의 갈등, 이웃과의 불화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눈길을 하느님께 돌릴 때, 세상의 위로가 아닌 하느님의 위로를 신뢰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의 문이 열린다.


​역사 속의 성인들은 무엇을 남겼을까? 어떤 분들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다. 이는 성인이 업적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모든 성인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에게서 나와 하느님을 만난다는 점이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이란 필요한 한 가지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나머지는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바로 이때 필요한 한 가지는 물론 다른 모든 것이 주어진다.” 성인들은 바로 그 ‘한 가지’, 즉 하느님이 삶의 전부임을 알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어놓음으로써 모든 것을 초월한 행복을 누린 분들이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은 단순히 그분들을 기억하기 위한 날이 아니다. 우리 또한 그분들이 누린 행복으로 초대받았음을 기억하는 날이다. 


​한 어린이가 아버지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정원의 바위를 들어 올리려 애썼지만 너무 커서 들리지 않았다.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네 힘을 다 사용하고 있지 않구나.” 아이는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는 있는 힘을 다 쓰고 있는걸요. 더 이상은 할 수가 없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나에게 도와달라고 청하지 않았잖니? 그것 역시 너의 힘이란다. 내가 여기 옆에 있는데도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것은 네 힘을 다 사용하지 않는 것이지.”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바란다. 일하고, 살림하고, 운동하고, 기도하며 모두 행복을 찾는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도움을 청하는 자녀의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둘째 독서에서 들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성인의 길로 초대하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나와 하느님을 찾을 때, 우리 역시 성인의 길, 참 행복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 앞에는 여전히 가난과 슬픔, 박해와 불의한 현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마음에 새기고, 자신에게서 나와 아버지를 향한다면, 우리 모두 하느님을 닮게 된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둘째 독서에서 이렇게 전한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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