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원가입  |   로그인  |   오시는 길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말씀의 숲
영성의 향기 말씀의 향기 수도원 풍경 세상.교회의 풍경 기도자리
말씀의 향기

성 십자가 현양 축일 -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5-09-19 14:11   조회: 4회

본문

성 십자가 현양 축일 -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오늘은 주님의 십자가를 높이 경배하는 축일이다. 십자가는 집안의 십자고상, 묵주, 성당이나 교회의 종탑 위에서, 목걸이 등 늘 우리 가까이 있지만 그 참뜻을 진지하게 새기고 있는지 의문이다. 사실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이해하기 힘든 신비가 바로 이 십자가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 우리가 경배하는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첫 독서는 이집트를 탈출한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했던 광야에서 벌어진 사건을 전한다. 힘든 광야 생활에 사람들이 불평불만을 쏟아 놓으며 하느님을 원망하자 주님께서 불 뱀을 보내신다. 불 뱀은 불평하는 사람들을 물어 죽이는데, 모세가 주님의 말씀대로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매달았다. 블 뱀에 물렸던 사람들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사람을 죽이던 불 뱀이 구원을 가져다주는 구리 뱀으로 바뀌는 역설이다. 이 구리 뱀이 예수님의 매달리셨던 십자가라고 복음은 풀이한다.


​예수님은 복음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이르신다. 불 뱀은 사람을 물어 죽였지만 높이 달린 구리 뱀은 쳐다보는 사람들을 살렸다. 세상의 악과 고통이 사람을 물어서 죽이지만, 세상의 모든 악과 고통을 안고 십자가에 높이 달린 예수님이 사람을 살리신다는 말씀이다. 그것이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방법이었고, 회피할 수 없는 고통의 문제에 대한,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인간 한계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이었다. 그래서 감사송에서 "죽음이 시작된 거기에서 생명이 솟아나고, 나무에서 패배한 인간을 나무에서 승리하게 하신다."라고 이 신비를 요약하여 감사드린다.


​십자가가 왜 그리 중요한가, 어째서 그것을 쳐다보면 병이 낫고 구원이 오는가? 십자가는 본래 중죄인을 매달아 죽이는 로마시대의 처형 도구였다. 세상 사람들은 안락하고 지혜로운 삶을 추구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1코린 1,23)라고 바오로는 전한다, 


​예수님이 거기 매달리셨다. 무슨 죄로 매달리셨나? 우리 죄를, 인간의 무능함, 원망과 미움, 삶의 한계, 분열, 거짓과 상처 등 한마디로 우리의 모든 어두움, 삶의 그림자를 안고 거기 매달리셨다. 죄가 전혀 없는 분이 사람의 모든 죄를 껴안고 거기 그렇게 높이 매달리심으로써, 당신 품에 안으신 인간의 모든 어둠과 그림자를 빛으로 바꾸신다. 그러기에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가) 곧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1코린 1,24)라고 바오로는 강조한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어둠과 상처는 빛으로 변모된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이요,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유다. 불 뱀에 물려 고통스러운 상처는 감추거나 숨겨야 할 무엇이 아니다. 내 무능과 한계와 아픔은 더 이상 부끄러워하거나 절망할 대상이 아니다. 십자가를 보고 그 위에서 두 팔 활짝 벌리고 기다리시는 분께 맡겨 드리고, 내 온 존재를 당신 품에 내려놓으면 주님께서 나를 품어 빛으로 바꾸신다. 이를 체험한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갈라 6, 14)


​어떻게 십자가를 바라볼 것인가?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다 보면 마냥 밝고 행복하지는 않고, 어두운 그림자도 보인다. 어느 집안이든 어둠이 있다. 무능한 자식이든, 병든 부모든, 늘 문제를 일으키는 조카든, 집안에 분란을 초래하는 며느리든 어둠을 불러오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자기 자신에게서도 십자가를 만난다. 질병이든 가난이든 성격이든 어떤 형태든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십자가다. 그 십자가를 버리지 말고, 탓하지도 말고, 외면하지 말고 기꺼이 껴안을 때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그때 그 사람의 어두움, 내 어두움, 우리 가족의 그림자가 치유되기 시작한다. 그때 사람이 밉기보다 안쓰럽고, 외면하기보다 품어주게 되고, 그때 불화를 넘어서 진정한 평화가 시작될 것이다. 사람의 어두움과 한계를 외적 현상만 볼 것이 아니라 내면까지 받아주면 빛으로 변모한다. 일상생활에서 십자가의 신비는 그러게 드러날 것이다. 


​지금 자신이나 가족이나 이웃이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을 당한다면, 십자가를 바라보자: 하느님의 아들이 무슨 죄가 있어 저기에 매달려 계신가 바라보자: 우리의 고통은 바로 십자가상의 주님의 고통에 함께 참여하는 것임을 조용히 말씀하실 것이다.  


​지금 자신의 죄책감과 열등감에 부끄럽기만 하다면 십자가를 바라보자: 하느님의 아들이 저기 저렇게 매달려 계신 이유는 바로 내 죄를 대신하심이라고, 저렇게 하심으로써 우리 모든 죄를 씻어 주심을 확신하고 감사와 찬미로 십자가를 바라보자.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너무도 힘들고 어두워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겠다면 십자가를 바라보자: "십자가가 있는 곳에는 부활이 가깝다." (D. 본 회퍼). 하느님의 아들이 저렇게 매달려 계심은 세상이 어두움으로,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증거다. 십자가 다음에는 부활이 기다린다. 그러기에 이 어두움과 고통은 새 삶의 기쁨이 그만큼 가까워진 증표임을 기뻐하며 십자가를 바라보자.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면서 이렇게 질문한다. '하느님의 아들이 무슨 죄가 있어 저기에 저러고 계시나?' 이 질문에,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신구약 성경 전체를 요약하여 이렇게 답변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출처] 말씀에



해뜨는 마을 l 영보자애원 l 영보 정신요양원 l 천안노인종합복지관
교황청 l 바티칸 뉴스 lCBCK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l 한국 천주교 주소록 l 수원교구
우. 13827 경기 과천시 문원청계길 56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56 MunwonCheonggyegill Gwachon-si Gyeonggi-do TEL : 02-502-3166   FAX : 02-502-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