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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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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목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4-10-24 10:07   조회: 1,253회

본문

연중 제29주간 목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5)라고 이르시고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 하고 축복하시던 분이

 

오늘은 왜 평화가 아닌 분열을 일으키러 왔고,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하실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은 종말의 심판에 나타나는 불(유딧 16,17; 이사 66,15-16; 에제 38,22; 말라 3,19)로써,

불의 심판은 곧 당신이 받으실 수난의 고통을 암시한다.

""은 또한 성령에 의한 세례와 성령 강림(루카 3, 16; 사도 2, 3.19)을 연상시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분열"은 마태 10,34에서는 ""이라고 표현하였다.

"분열"은 거짓 예언자들이 주는 평화(예레6,14; 8,31; 에제13,10.16)를 거부하는 역설적 표현이다(주석성경).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속에서 추구하는 무사안일한 평화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시작하며 역동적으로 이어지는 평화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이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다.

자신(Ego)이 중심에 서있으려는 본능에 "분열을 일으키는" 식별의 과정,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이루려는 야망에 "불을 지르는" 정화의 과정이 없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구원을 성취하려는 본능과 야망을 따를 때 하느님이 계실 자리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참 평화의 길에 놓인 식별이나 정화는 자기중심적 인간 본능에는 걸림돌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걸림돌을 통하여 나 있다."(키르케고르)

말씀에서 우리가 걸림돌에 넘어질까 염려하시며, 본능과 야망을 태울 불길을 외면하지 말라고 격려하시는 주님,

우리 스스로 불을 지를 수 없는 상황에서 당신 자신을 불태우심으로 우리를 정화하시는 주님을 만난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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