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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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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일 나해 – 사랑의 이중 계명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4-11-03 08:45   조회: 1,116회

본문

연중 제31주일 나해 사랑의 이중 계명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또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는 사랑의 이중 계명이 선포된다. 왜 사랑해야 하나? 사랑이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할까?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아베 피에르 신부는 삶을 마무리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것이 있다. 절대로 망쳐서는 안 되는 그 두 가지 일은 사랑하는 것과 죽는 것이다."라며,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영원한 사랑과의 영원한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주어진 약간의 시간일 뿐이다. 인생의 학교에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든가, 괴물이 되든가." 사랑은 무엇이기에 인생에서 그토록 중요할까?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 모습을 살펴보자.

 

"내가 십 대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 함께 서커스를 구경하러 갔는데, 우리 앞에 한 가족이 매표소에 있었다. 그 가족은 아이들이 여덟 명이나 되는 대식구였다. 그 집 아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부모 뒤에 손을 잡고 서서 그날 구경할 어릿광대와 코끼리, 그리고 온갖 곡예들에 대해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전에는 한 번도 서커스를 구경한 적이 없었고, 그날 밤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들의 부모 역시 자랑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매표 차례가 되자 그 집 아버지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자랑하듯이 말했다. "온 가족이 서커스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어린이 표 여덟 장과 어른 표 두 장을 주시오." 그러자 매표원이 입장료를 말했다. 그 순간 아이들의 어머니는 잡고 있던 남편의 손을 놓고 고개를 떨구었다.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창구 직원에게 다시 물었다. "방금 얼마라고 했소?" 매표소 직원이 다시 금액을 말했다. 남자는 그만큼의 돈을 갖고 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한껏 기대에 부푼 아이들에게 이제 와서 서커스를 구경할 돈이 모자란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때였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의 아버지가 말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2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런 다음 아버지는 몸을 굽혀 그것을 다시 주워 들더니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보시오, 선생. 방금 당신의 주머니에서 이것이 떨어졌소." 남자는 무슨 영문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는 결코 적선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절망적이고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아버지가 내밀어 준 손길의 뜻을 받아들였다. 남자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2O 달러 지폐를 꼭 움켜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소, 선생. 이것은 나와 내 가족에게 정말로 큰 선물이 될 것이오." 남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들은 곧 표를 사서 서커스장으로 들어갔다. 나와 아버지는 서커스를 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당시 우리 집 역시 부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서커스 구경을 못 했지만 마음은 결코 허전하지 않았다."(댄 클라크)

 

서커스를 보지 못한 소년과 아버지는 서글펐을까? 화가 났을까? 우울했을까? 불행을 느꼈을까? 그와 반대로 당당하고 편안하고 행복했을 것이다. 왜 사랑해야 하나? 사랑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살아갈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인간이 짐승이나 괴물이 아니라 존엄한 존재임을 드러내어 사람을 사람답게 해 주기 때문이다. "사랑은 행복의 근원이다. 또한 우리 자신을 이루고 있는 가장 깊은 부분이고, 우리 안에 살면서 우리를 영원과 연결해 주는 에너지이다. 사랑은 삶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선물이다. 사랑은 공허함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진실의 근원으로써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E. 쿼블러로스)

더 나아가서 사랑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의 영혼 안에 하느님이 태어나게 해 준다. 그러기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복음에서 제시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관계에 관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탁월한 가르침을 주신다.

 

"이웃 사랑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하느님과 내밀한 만남을 가질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럴 때에 나는 내 눈과 감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분(하느님)의 친구는 곧 나의 친구입니다. 겉모습을 넘어서 나는 사랑과 관심의 행위를 보여 달라는 그의 내면의 열망을 깨닫습니다. 나의 삶에서 하느님과 그 어떤 관계도 갖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 이상의 것을 전혀 볼 수 없으며, 그에게서 결코 하느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오로지 열심해지려고’, 종교적 의무를 다하려고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된다면, 나와 하느님의 관계 또한 메말라 버릴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그럭저럭 괜찮지만사랑이 없는 관계입니다.

 

(역으로) 기꺼이 내 이웃을 만나 사랑을 드러내고자 할 때에만 나는 하느님께도 마음을 쓸 수 있습니다. 내가 이웃에게 봉사할 때에만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만나 이웃 사랑의 힘을 끊임없이 길어 올렸으며, 거꾸로 그 만남은 이웃에 대한 봉사를 통하여 더욱 생생해지고 심오해졌습니다. 따라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나뉠 수 없으며, 하나의 계명을 이룹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둘 모두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외부의 계명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내부에서 얻는 사랑의 체험에서 생겨납니다. 이 사랑은 본질상 다른 사람들과 서로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통하여 자랍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나오고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시켜 주기 때문에, 사랑은 하느님이 되는 것입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8)

 

사랑의 박사라고 불리는 아우구스티노 성인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그대는 단 한 가지 짤막한 계명을 받았습니다.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대 마음대로 하십시오. 침묵하려거든 사랑으로 침묵하십시오. 말을 하려거든 사랑으로 말하십시오. 바로잡아 주려거든 사랑으로 바로잡아 주십시오. 용서하려거든 사랑으로 용서하십시오. 마음 깊은 곳에 사랑의 뿌리를 내리십시오. 이 뿌리에서는 선한 것 말고는 그 무엇도 나올 수 없습니다."(아우구스티노, '요한서간 강해' 78)

 

[출처] 밀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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