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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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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6-07-24 17:03   조회: 9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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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13,18-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18-23)


어느 날 제 1독서를 읽는 중에 한 말씀에 전율이 돋았습니다.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야고 1,21) 이전에도 여러 번 읽었을 말씀이었지만, 그날은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이라는 표현이 처음 듣는 말씀처럼 가슴을 치고 들어왔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 “심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하느님의 말씀이 심어진 하나의 화단이지 않은가? 너무 감사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오늘 복음의 질문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주셨는가?”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말씀을 주셨습니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안에 심어진 말씀과 나는 어떻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즉 말씀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 


“하느님의 씨”가 우리 안에 심어졌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셨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그리스도를 닮으며, 사랑과 자비의 열매를 맺도록 부름받은 가능성이 심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먼저 씨앗을 심으셨고, 우리는 그 씨앗을 받아들이고 돌보며 열매 맺도록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이 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완전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안에 심어 놓으신 생명이 자라도록 협력하는 일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여기에서 “공손히”라는 말은 단지 예의 바른 태도를 뜻하지 않습니다. 이는 “온유하게”라는 뜻을 지닙니다. 말씀을 온유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지 않고 말씀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말씀으로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가르치고 빚어가시도로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태도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대화를 합니까?


그날 아침,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 심어져 있다.”는 전율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바꾸어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십니다(마태 5,45). 그렇다면 내가 만나는 사람도 모두 하느님의 씨앗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공동체는 완성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서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속도로 말씀의 씨앗을 키워 가는 사람들의 모임이 우리의 공동체입니다. 어떤 이는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고, 어떤 이는 뿌리를 내리는 중이며, 어떤 이는 가지치기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것은 재촉보다 기다림이며, 판단보다 돌봄이고, 단죄보다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는가였습니다. 농부가 씨앗을 심은 뒤 매일 땅을 파헤쳐 싹이 났는지 확인하지 않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때를 신뢰하며 서로를 기다려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안에 심어진 말씀은 지금 싹을 틔우고 있습니까? 그 싹은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그리고 내 삶에서는 어떤 열매가 자라고 있습니까? 이 피정중에 주님의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입시다.  열매가 아직 열리지않아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양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이는 백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서른 배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열매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맡겨진 씨앗을 공손히 돌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열매의 크기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말씀을 얼마나 공손히 받아들이고 정성껏 돌보았는지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질문:

아직 열매가 보이지 않는 사람을 판단하거나 재촉하지 않기위해 내가 바꾸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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