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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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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5-11-24 13:20   조회: 11회

본문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오늘은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께서 온 누리의 진정한 왕이심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왕’이라는 말은 과거의 전제군주를 떠올리게 하여 현대의 감각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첫 독서에서 드러나듯, 성경에서 ‘왕’은 본래 백성을 보호하며 이끄는 “목자이자 영도자”를 뜻하며, ‘주님’이라는 호칭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어떤 방식으로 왕이 되셨는지, 또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공생활 기간에 예수님은 왕으로 추대 받은 적이 있었다. 빵의 기적을 베푸셨을 때였다(요한, 6.15).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셨을 때 왕으로 세우려 하였지만 예수님은 산으로 피해 가셨다. 그런 분이 오늘은 사형수로 "유다인들의 임금(INRI)"이라는 죄명 패가 붙어있는 십자가에 달려계신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 위풍당당하게 왕이 될 기회에는 피신하셨다가, 수난과 죽음의 자리에서 왕이라는 명패를 받으신다. 참으로 역설적인 사건이다. 예수님의 왕권은 사람들의 지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집권하려는 투쟁이 아니라 죽음까지 받아들이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왕권이었다.


​이 모든 사건이 역사적, 사회적, 개인적으로 절망적인 어둠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예수님이 처형당할 당시 유대 민족은 로마의 식민 통치 아래 있었고, 사회는 계층 갈등과 혼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절망의 때에 억울한 죽음을 맞으신다. 가장 암담한 순간에 그리스도의 왕권이 드러난 것이다. 그분은 온갖 부정을 저지르며 대중의 인기에 기대어 권력을 잡는 정치적 왕이 아니다. 권력을 이용해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부정부패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장사꾼의 왕이 아니다. 그분은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써 사람들을 당신께 끌어올리는 자비의 왕이시다.


​우리는 어떻게 이 왕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뉘우치던 강도, 곧 이 왕국의 첫 손님이 그 길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양옆에는 두 명의 사형수가 있었다. 그들은 사형이라는 절망의 극한 속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대부분 이런 상황에 놓이면 세상을 원망하기 마련이다. 왼편의 사형수도 그랬다. 그는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라며 예수님께 모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오른편의 사형수는 전혀 달랐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며, 예수님께 자비를 간청하는 모습이다. 이에 예수님은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신다.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자신에 대한 낙담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며 뉘우치는 태도에서 왕국의 문이 열린다. 죄 없는 의인이 아니라 뉘우치는 죄인, 그것이 왕국에 들어가는 조건이었다.


​복음 말씀은 이렇듯 좌절과 절망, 회의와 방황, 삶의 어둠 한가운데, 마지막으로 죽음의 순간에 그리스도의 왕권이 드러남을 일러준다. 인간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와 가장 가깝게 결합될 수 있다. 살면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마치 지옥 같은 때가 있다. 누구도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단절된 상황,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로 그때,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고백하면 주님은 우리의 손을 잡아 당신 왕국으로 이끄신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뉘우치는 강도에게 왕국을 약속하셨듯, 어둠 한가운데서라도 우리의 눈길을 당신께 돌리기만 하면 그 순간 모두를 받아주시는 왕, 이 분이 그리스도 왕이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자. 어떻게 해서든 높아지려 하고, 작은 권력이라도 잡으면 타인을 지배하려 하며, 사람들의 환호와 성공, 크고 멋진 것만을 최고로 여기는 ‘왕들’이 넘쳐난다. 오늘 축일은 이러한 세상 속에서 죽음을 넘어서는 진정한 왕이 누구이신지 일러준다. 둘째 독서에서 그 왕의 모습을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전한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십자가의 피를 통해 우리를 참된 평화의 왕국으로 이끄시는 그리스도께 감사 기도를 드리자. 또한 왕국의 시민이 되도록 우리를 초대하시는 우리의 왕, 우리들의 맞이이신 그리스도 왕께 뉘우치던 강도의 심정으로 고백하자.


​“이렇게 어둡기에, 이토록 무능하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저에게 당신께서는 진정한 왕이십니다. 

이렇게 낮아지시고 다가오시고 살펴 주시고 끝내 목숨까지 내어 주시며 사랑하시기에, 당신은 속 좁고 불안하며 그러면서도 갈증에 허덕이는 나의 왕이십니다. 

시작이요 마침이신, 창조 이전부터 이미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세상 끝 날까지 나와 함께 하심을 약속하신 당신만이 나의 왕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당신이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왕이신 당신에게로 제 눈길을 돌립니다. 

그리하여 당신 왕국의 시민이 되렵니다. 

그리하여 당신과 마찬가지로 내려가렵니다. 

높은 곳, 편하고 괜찮은 자리, 인정받는 자리가 아닌 무시당한 곳, 외면당하는 이웃에게 다가가 나를 내어주렵니다. 

왕국의 시민으로써, 왕이신 당신의 모습을 닮으렵니다. 

당신이 저의 왕이시기에 그곳에 당신께서 현존하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시작이요 마침이시며, 끝이 없으신 왕국의 왕이십니다. 

당신 만이 저의 왕이십니다. 

예수님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C. M. 마르티니)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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