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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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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5-01-01 10:56   조회: 928회

본문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리들이 나누는 인사처럼 새해 첫날 듣는 하느님의 말씀은 복을 빌어주는 말씀들이다. 첫 독서 민수기는 사제들이 백성에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전한다. 이어서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라고 복을 빌어준다. 두 번씩 "하느님의 얼굴"이 등장하며 은혜와 평화를 주신다는 말씀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믿음의 대상인 하느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구약에서 하느님은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탈출 33, 20)고 말씀하셨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느님과의 만남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하느님의 형상을 만들지도,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도 못하였다(탈출 20, 4-7 참고). 그 결과 신상을 만들 수 없었고, "야훼"라는 하느님 이름도 직접 부르지 못하고, 암호처럼 '아도나이'(주님) 등으로 바꾸어서 불렀었다. 결국 민수기의 사제들의 축복은 온전하게 실현될 수 없는 축복이었다.

 

그런데 복음은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구원자 주 그리스도"라고 천사가 전한 하느님의 아들을,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뵈었을 뿐 아니라, 이름도 알려진다.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라고 복음은 전한다. 이제 하느님의 이름은 두려워서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는 암호가 아니라, "예수"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름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지닌 한 인간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주셨다. 이름과 더불어 그 이름을 지니신 인격이 우리를 위해 태어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게 된 놀라운 사건이다. 사제의 말로써 이루어지는 구약의 축복과는 비교할 수없이 큰 축복이다. 이로써 "주님의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화답송)라고 청하던 갈망이 채워진다. 하느님의 얼굴인 예수님을 직접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태어나신 데서 더 나아가 "우리 안에" 성령을 보내셨다고 둘째 독서 갈라티아서는 전한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영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고, 함부로 부르지도 못하던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 이 축복으로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하느님을 상속받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성부(1독서)와 성자(복음)와 성령(2독서)의 축복이 새해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강복이다.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요한 12,21). 사람들이 필립보에게 요구한 간청이다. 이천 년 전의 그들처럼 우리 자신도, 우리의 이웃들도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해 달라는 요청뿐 아니라, 그분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고,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대로 증언할 수 없다(요한 바오로2, 새 천년기 16). 어떻게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거기서 하느님의 얼굴을 뵐 수 있을까?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는 우리에게 복음은 이렇게 일러준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세상에 하느님의 얼굴을 보게 해 주신 마리아처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일희일비 하기보다, 하느님의 뜻을 살피려는 심정으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길 때, 주님의 마음을 만난다. 그때 일상의 만남과 사건에 담긴 주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마리아의 태도는 바로 묵주기도 신비의 의미이기도 하다(H. U. von 발타사르).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 26)라고 하시며 성모님께 제자들을 맡기셨다. 평생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여 사셨던 성모님은 아들 예수의 이 말씀을 충실히 지키신다. 아들 예수를 온 삶을 바쳐 돌보셨듯, 성모님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기다리고, 받아 주시고, 지켜 주신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의 눈물과 걱정, 불안과 고뇌 등 인생의 모든 여정을 성모 마리아께 맡기자.

 

새해를 맞이했지만 불경기에, 무도한 권력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그 와중에 참혹한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주저앉지 말고 성모님이 그러셨듯 내 삶을 하느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믿음을 새롭게 하는 복을 청하자. 누구도 알아주는 이 없이 외로울 때,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고백하는 복을 청하자. 끝 모를 욕심이 올라올 때, 살과 피를 내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자신을 비우며 하느님 자녀의 자유를 되찾는 복을 청하자.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른 채 분주히 뛰어다닐 때, 걸음을 멈추고 내가 하느님 말씀을 따르고 있는지 곰곰이 물어보자. 묵주기도의 신비를 묵상하며, 성모님처럼 마음속에서 곰곰이 되새기면 하느님이 주시는 복이 다가온다. 주님의 얼굴이 드러난다.

 

2025년은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주제로 맞이하는 희년이다. 성경과 교회 전통에서 희년은 해방과 구원을 기념하는 해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가 받은 해방의 은총을 기억하자. 현실이 아무리 춥고 어두워도 하느님이 복을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구원의 희망을 새롭게 하는 순례자로 새해를 맞이하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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