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원가입  |   로그인  |   오시는 길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말씀의 숲
영성의 향기 말씀의 향기 수도원 풍경 세상.교회의 풍경 기도자리
말씀의 향기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 예수님은 순종하며 지냈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4-12-30 13:34   조회: 940회

본문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 예수님은 순종하며 지냈다.

 

오늘은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이 이루신 성가정을 기리며 본받기 위한 성가정 축일이다. 우리가 본받으려는 성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행복이 넘치는 평온한 가정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노동자 아버지와 미혼모 어머니, 갓나서 바로 수배자가 되어 피신했던 아들로 구성된 기구한 가정이 성경의 성가정이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자식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예수님은 어머니로부터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라고 책망을 듣기도 한다. 이러한 가정에서 무엇을 본받으라는 말일까?

 

오늘 들은 성경 말씀에서 성가정의 본질이 드러난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첫 독서, 부부간에 사랑과 순종을 당부하시는 둘째 독서와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는 복음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성경 말씀은 "순종"을 언급한다. 순종이 성가정의 조건이었다. 사람들은 순종이라는 단어를 거북스러워 한다. 개성, 평등, 주체성, 자기실현 등을 강조하는 현대인들은 권위주의적, 억압적 뉘앙스를 지닌 순종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런데 왜 순종이 성가정의 조건일까?

 

성경에서 순종은 강제적이고 수동적인 복종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순종은 인생과 역사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고 하느님이라는 고백에 바탕을 둔 태도를 말한다. 하느님이 주인이시기에 그분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자발적으로 따르는 것이 순종이다. 구세사에서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는 순종과 불순종의 대립이었다. 태초에 아담은 하느님께 불순종하였고 이후 카인을 비롯하여 반역의 역사가 바벨탑 사건까지 이어지며 인간을 파멸로 떨어뜨린다. 이에 반해 구원의 역사는 아브라함의 순종에서 시작되어, 성조들을 통해 면면히 이어지다가 "세상에 오셨을 때"(히브 10.5)부터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필립 2,8) 순종하시는 예수님에 의해 완성된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의 성가정은 어떤 고통과 시련 앞에서도 하느님과 가족 서로에게 순종하는 가정이었다. 시작부터 천사의 알림을 마리아가 듣고 받아들여 예수님을 낳았고(루카 1, 38), 요셉은 꿈에 나타난 천사의 지시를 듣고 받아들인다(마태 2, 13-15).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냈던 아들 예수님은(루카 2, 51) 생애의 시작부터 마침까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순종한다. 바오로는 예수님의 본질적 특성을 순종으로 파악하여 이렇게 전한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 2, 6-8)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께 순종하셨기에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이들도 하느님께 순종한다. 순종은 주인이 있음을 전제로, 주인의 뜻을 따르려는 이들만이 할 수 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입장에서 순종은 불가능하다. 자기 자신이 주님인 사람들에게 주님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사람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받아들이며, 또한 가족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며 경청하는 순종이 성가정의 바탕임을 일러준다.

 

누구나 화목한 가정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가정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어딘가로 내다 버리고 싶은 관계다."라는 말이 있다. 서로 사랑한다면서도 상처를 가장 많이 주고받는 애증의 관계가 가족이기에, 어떤 때는 내다 버리고 싶기도 하다. 무엇이 불화의 근본 원인일까? 가족문제 상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는 "남편이 제 말을 항상 귓등으로 흘려요.", "아내는 내 말을 제대로 새겨듣는 법이 없습니다."라는 하소연이라고 한다. 가족관계가 힘들어지는 근본 원인은 서로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증이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과가 가족의 해체다. 역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열쇠가 서로의 말을 들어주는 경청, 성가정이 모범을 보인 순종에 있음을 일러준다.

 

신앙생활에서 순종은 쉽지 않다. 하느님이 직접 말씀하시면 순종하겠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냐고 사람들은 항변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직접 일러주시지 않고 다른 이들이나 사건, 혹은 자연과 역사를 통해서도 일러주신다. 부모나 아내, 남편이나 스승에게 순종할 이유가 여기 있다. 다른 이들이나 사건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나를 이끄신다는 믿음이 없다면 순종은 하기 힘들다. 믿음과 순종의 관계를 본 회퍼는 이렇게 갈파하였다. "믿는 자들만이 순종할 것이며, 순종하는 자들만이 믿게 될 것이다."

 

믿음에 바탕을 둔 순종은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한결같다. 오늘 복음에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소년 예수의 말씀에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받아들인다. 믿음으로 하느님께 순종하는 모습이다. 우리에게도 가족 간의 관계뿐 아니라 공동체에서도 종종 알아들을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이해하지 못한 일을 두고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기는 참 힘들다. 몰라도 순종하라는 말은 머리로 이해가 되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당황하고 속상할 때가 더 많다. 어떻게 해야 하나? 복음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그렇다. 지금 벌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고, 믿음을 저버리고 불순종할 필요는 없다. 마리아처럼 하느님께 신뢰하며 그 뜻이 드러날 때까지 마음에 담아두자. 신뢰하며 기다릴 때 언젠가 틀림없이 주님이 그 뜻을 알려주신다.

 

복음에서 소년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 머물러 계시길 바랐지만 집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냈다"고 전한다. 죽기까지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신 예수님이, 세상에서 드러나게 그 순종을 가장 먼저 보이신 곳은 가정이었다. 가정이 강생의 신비가 첫 번째로 실현되는 곳임을 암시하며, 또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바로 강생이 이루어는 곳임을 일러준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때 지금 여기에서 바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는 사건이 일어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라고 마무리된다. 하느님을 신뢰하며 한결같이 순종할 때 우리도 나날이 더 지혜로워지고, 하느님의 은총과 사람들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나날이 자라날 것이다.


[출처] 말씀에

해뜨는 마을 l 영보자애원 l 영보 정신요양원 l 천안노인종합복지관
교황청 l 바티칸 뉴스 lCBCK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l 한국 천주교 주소록 l 수원교구
우. 13827 경기 과천시 문원청계길 56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56 MunwonCheonggyegill Gwachon-si Gyeonggi-do TEL : 02-502-3166   FAX : 02-502-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