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일 다해 -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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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일 다해 -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구원 약속을 믿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 약속은 언제 이루어질까? 현실이 힘들고 암울할수록 절박하게 다가오는 물음이다. 오늘 성경 말씀은 구원이 "오늘" 이루어진다고 전한다. 첫 독서는 나라가 망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백성 이야기다. 모든 것이 파괴된 암담한 현실에서 절망하는 백성에게 에즈라가 하느님의 규범을 들려준다. 사람들은 이를 듣고 주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과거를 애통해 한다. 그러자 에즈라와 느헤미아는 "이날은 거룩한 날이니 먹고 마시라."라고 말한다. 과거를 반성은 하되 거기 묶여 울지만 말고, 하느님 앞에서 오늘 새로 시작하며, 새로 난 백성의 기쁨을 지금 여기서 누리라는 권유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절망에 빠진 백성이 염원하던 구원 약속이 오늘 이루어졌음을 선포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라는 이사야의 예언(61, 1-2)이 "오늘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예수님이 선언하신다. 구원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지금 여기서 이루어진다는, 예수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기쁜 소식이다.
구약의 백성들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위로를 받았었다. 신약의 백성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약속이 오늘 이루어지는 은총을 누린다. 더 나아가 바오로 사도는 둘째 독서에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라는 말씀으로,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전한다. 구원은 오늘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를 위해 살아감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설명이다.
시간을 기준으로 볼 때, 사람들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살아간다. "나 때는 말이야 …"라며 옛날을 기준으로 과거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내일부터 기도를 해야지. 내일부터 운동을 해야지." 하는 식으로 삶의 과제를 미래로 미루거나, 지레짐작으로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과거나 미래에 사는 이들에게 오늘은 없다. 오늘이 없으면 지금 여기서의 생동감 넘치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 힘들다. 그들은 고리타분한 과거 타령이나 알 수 없는 미래에 행복을 유보한 채 지루하고 공허하게 살아간다.
베트남의 공산화 이후 13년간 감옥생활을 하며 언제 끌려가서 총살을 당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을 겪은 구엔 반 투안 추기경은 신앙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죄수들은 교도소에서 풀려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기다리면서 시간을 소비한다면 아마도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에는 절대로 도달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작정했습니다. '나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현재의 순간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면서 살아보리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뜻밖에 떠오른 영감이 아니라, 나의 전 생애를 통해 성숙되어 온 확신입니다. . … 미래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저를 덮칩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로 미래를 생각합니까? 저한테는 오로지 지금 이 순간만이 소중합니다. 미래는 제 영혼 속에 거처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 지나간 시간은 제 능력 밖에 있습니다. 어떤 것을 바꾸거나 수정하고 보충할 수 있는 제 능력 밖에 있습니다. 과거나 미래에 속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 드립시다. … 오, 지금 이 순간이여, 너는 온전히 내게 속해 있구나.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면서 어린이처럼 나아갑니다. 날마다 당신의 큰 영광을 위해 사랑으로 타오르는 제 마음을 당신께 올립니다."
지금 여기서 구원을 체험하는 구체적 일이 복음에 담겨있다. 예수님이 "오늘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선언하신 일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하실 능력은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는 말씀에 드러난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세례로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따르며 세례를 받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오늘 여기서 이 말씀이 이루어지게 할 사명을 받았다.
그 사명은 먹고살기 힘들고 마음 둘 곳 없는 가난한 이에게 오늘 내가 따뜻하게 위로하라는 사명이다.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게 주님의 자비를 전하며 마음을 풀어주는 사명이다. 욕심에 눈이 먼 이들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는 삶의 진실에 눈을 뜨게 해주는 사명이다. 차별과 억압 속에 짓눌린 이들에게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늘 억울한 이들과 함께 하심을 일러주는 사명이다. 이 사명을 지금 여기서 실행하면 오늘, 주님의 은총의 해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예수님의 일을 우리의 일로 실행하면, 옛날이 아니라 지금, 미래에 유보된 어떤 곳이 아니라 여기서 참된 행복을 누린다.
이때 우리 각자의 삶이 하나의 성령 안에 그리스도와 하나로 일치하게 된다. 이를 두고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에서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면 오늘 구원이 온다.
성인이 되신 교황 바오로 6세는 매일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한다.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겠습니다. 제가 처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의무를 당신 몫으로 알고 기꺼이 단순하고 겸손하고 용감하게 수행하겠습니다. 모두 하겠습니다. 잘하겠습니다. 기쁘게 하겠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때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심정으로 현재를 사는 모습이다. 오늘 주어지는 일을 "서둘러 하겠습니다. 모두 하겠습니다. 잘하겠습니다. 기쁘게 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맞이하면 우리에게도 지금 여기서 구원이 시작될 것이다.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