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간 월 -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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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간 월 -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 ....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
종교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번제와 희생제, 단식 등 신심을 표현하는 희생을 한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삶의 한 부분을 희생하며 이를 밖으로 드러낸다.
문제는 그 희생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이 아니라 자기만족에 그치는 경우다.
하느님은 뒷전인 채 자기만족을 위한 단식 등의 종교행위(복음)는 하느님과 무관한 취미생활이다.
예수님의 경우는 단식하지 않으신다.
당신의 신념은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따름이고, 그 표현이 당신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단식이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함이라면, 당신 현존 자체가 찬미이자 잔치였다.
믿는 이에게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주님과 함께 있는 사실이 단식을 뛰어넘어 신랑과 함께 있는 잔치다.
말씀을 듣는 자세(순명)가 아니라면 번제, 희생제, 단식, 더 나아가 목숨을 바친들 하느님과는 무관하다.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헌 옷과 헌 부대는 새 천과 새 포도주 이전의 과거, 즉 예수님 이전의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구원을 율법 준수 등 인간의 힘으로 성취하려고 시도하였지만,
넘을 수 없는 한계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율법의 형태로 제시되었던 각종의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사람을 구원하기보다 질식시킬 정도로 사람을 묶어두기만 하였다.
새 옷과 새 부대에 관한 말씀은 율법 준수 등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려 하지 말고
자기 밖으로 나와 은총에 의해 새 마음, 새 존재가 되라는 초대 말씀으로 들린다.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서 새 술로 오시는 주님을 새 마음으로 맞으라는 초대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