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원가입  |   로그인  |   오시는 길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말씀의 숲
영성의 향기 말씀의 향기 수도원 풍경 세상.교회의 풍경 기도자리
말씀의 향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5-09-21 08:59   조회: 25회

본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오늘은 한국 순교 성인을 기리는 날이다. 우리나라의 순교자들은 주교, 사제, 신학생, 궁녀, 과부, 동정녀, 소년, 노인, 관리, 양반, 백정 등 참으로 다양한 이들이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처지였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바쳤다는 점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라고 이르신다. 서로 다른 계층에 속했던 우리 순교자들은 한결같이 복음 말씀대로 “자신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분들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버린다."라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자신을 버리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원문 "aparneisthai"는 "'아니오'라고 말하다, 거절하다"라는 뜻이다. 이 말씀이 등장한 문맥을 고려하면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신 직후, 제자들에게 당신을 따르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따르고는 싶지만 수난과 죽음은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그것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 보존 본능 때문이다. 


자기 보존 본능은 모든 생명체가 지닌 가장 근본적인 본능으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경향이다. 이 본능은 단순한 생존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이 본능이 나타난다. 불안에 찬 자기보존 본능은 때로는 불안한 마음에 하느님조차 자기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Drewermann). 그 결과, 근래 유사종교나 극우 그리스도교 운동 등에서 “복음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취합하는 복음의 도구화” 현상이 나타난다. 잘 되기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려는 태도다. 


바로 이러한 자기 보존 본능에 "아니오"라고 거절하는 것이 곧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욕심을 버리거나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 부정이나 자학, 혹은 자존감을 무너뜨리라는 뜻도 아니다. “예수님은 좋지만 희생은 싫다”, “구원은 감사하지만 죽음은 피하고 싶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자” 하고 속삭이는 본능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참된 자기 부정이다.


순교자들은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으려는 본능에 “아니오”를 외친 분들이다. 이분들은 어떻게 "아니오"를 외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자기를 버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세상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주인은 내가 아니오, 천주께서 세상의 주인이고 나의 주인이십니다.”라고 믿음을 고백한 분들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옥중에서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호소하신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지 않겠는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신 임자이시며 세상의 주인이심을 깨달을 때, 우리는 창조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H. U. Balthasar는 동서고금의 모든 순교자들 삶을 고찰하여 공통점을 찾아낸다. 그 공통점은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삶에의 진지함"이라고 설명한다. 순교자들이 발견한 창조 목적은 곧 하느님께서 나를 만드신 목적, 내가 세상을 살아갈 이유였다. 그 목적은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모든 순교자들이 배운 교리문답(1566년 로마 교리서) 첫 항목에 잘 드러난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났느니라." 


이 문답이 첫머리에 위치한 이유는 삶에서 첫째 가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김 대건 신부님이 남긴 편지들은 그분의 삶과 죽음을 관통한 원리와 기초가 바로 위의 교리서 1번 문답이었음을 보여준다. 신부님은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교우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하셨다. "천주께서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창조주와 그 뜻을 생각할지어다." 


순교자들은 이 창조 목적을 단순히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진지하게 실천하였다. 인간의 말이나 행동에 진지함, 즉 진정성이 없으면 관계가 힘들어진다. 더불어 사는 삶의 어려움도 일 자체보다 사람들의 불성실함, 진정성 없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진정성이 없는 사람은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없다. 이들은 세상만사를 냉소적으로 대하며 건성으로 무의미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김 대건 성인과 한국 순교자들은 창조 목적에 진지한 분들이었다. 그분들은 소중하게 발견한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열정으로, 주님과 하나 되는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가신 분들이었다.


창조 목적에 진지한 삶이 무시당하거나 도전받는 세상이다. "오늘날 우리는 매우 자주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음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양보해 타협하고, 복음의 근원적 요구를 희석시키며, 시대정신에 순응하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 위에 최우선으로 모시고, 그다음에 이 세상의 다른 온갖 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원한 나라와 관련해서 보아야 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순교자들은 우리 자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런 것이 과연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우리나라의 124위 순교자들을 시복하며 들려주신 말씀이다. 


오늘 우리 스스로에게 교황님의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삶은 무엇인가? 참으로 나는 무엇을 위해 세상에 태어났는가? 세상의 진정한 주인, 내 인생의 참 임자는 누구신가?” 그 질문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주님 말씀을 실천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출처] 말씀에

해뜨는 마을 l 영보자애원 l 영보 정신요양원 l 천안노인종합복지관
교황청 l 바티칸 뉴스 lCBCK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l 한국 천주교 주소록 l 수원교구
우. 13827 경기 과천시 문원청계길 56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56 MunwonCheonggyegill Gwachon-si Gyeonggi-do TEL : 02-502-3166   FAX : 02-502-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