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월 -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본문
연중 제6주간 월 -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독서)
아벨의 죽음 이래 무죄한 자의 죽음은 오늘날도 매일 벌어진다.
그 죽음이 형제인 인간에 의해 벌어지는 참사라는 점이 경악스럽다.
내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형제를 죽일 수도 있다는 분명한 사실에 예외는 없다.
육체는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내가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타인을 죽이기도 한다.
이 참혹한 현실을 넘어설 길이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복음)
예수님에게 표징을 요구하는 인간들의 숨은 의도는 예수님을 죽일 명분을 찾는 데 있었다.
예수님은 인간의 사악함, 그 인간 한계에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 하신다.
그리고 이르신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이유든 사람을 죽일 명분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아버지가 만드신 세상을, 그 중심인 인간을 파괴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하느님이 만드신 존엄한 인간과, 죽고 죽이려는 사악한 인간 본성 사이의 모순이 첨예하다.
모순의 양 극단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고, 그 위를 줄을 타듯 살아가는 현실이 삶 아닌가?
위험천만한 이 인간 현실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넘어서게 하실 것인가?
예수님은 '표징을 보여 줄 수는 없다, 그러나 표징이 될 수는 있다.'라고 속으로 말씀하시는 듯하다.
그 표징은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이었다.
그러기에 마태오복음은 같은 주제를 전하는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한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마태 12, 39-40)
자신을 위하여 형제를 죽이는 세상 문제의 답은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이었다.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