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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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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일 다해 -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5-03-08 16:24   조회: 645회

본문

사순 제1주일 다해 -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사순절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수난 당하셨음을 기념하는 때다. 사순 첫 주일인 오늘의 말씀은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고 왜 그렇게 사셨는지를 전한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하느님이 삶의 중심이셨던, 하느님의 아들이셨다.

 

예수님은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의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다고 전한다. 하늘과 땅만 보이는 광야는 굶주림과 목마름의 장소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온갖 신기루가 펼쳐지는 곳이자, 인간의 온갖 욕망이 꿈틀대는 곳이었다. 성경에서 광야는 탈선과 충실, 우상숭배와 하느님을 체험하는 이중적 장소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지나며 시련과 유혹에 시달렸다. 자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배부른 노예로, 이집트의 종살이로 되돌아가려는 유혹을 당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 대신 눈에 보이는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광야는 모세처럼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였다. 세상의 참된 주인은 모래바람에 쓸려가듯 없어지는 환상이나 욕망이 아닌, '있는 나'(탈출 3,14)인 하느님을 체험하는 곳이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광야에서 구약의 백성들이 당했던 유혹을 당하고, 그 유혹을 하느님만이 참으로 온 세상의 주인이라는 믿음으로 이겨 내신다. 예수님이 겪으신 유혹은 당신의 온 생애에서 겪으신 유혹 모두를 집약하고 있다. 또한 그 유혹은 예수님만 겪으신 사건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려는 인간 모두가 겪는 유혹을 상징한다. 그러기에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유혹을 당하는 우리가 유혹 앞에서 하느님 말씀을 듣고, 하느님만을 섬기며, 하느님 자녀로 살아갈 길을 일러주신다.

 

예수님이 당하신 첫 번째 유혹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라는 유혹이었다(이하 베네딕토 16, 나자렛 예수, 참조). 먼저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자기 증명을 하라는 요구다.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실 것이다."(지혜 2, 18)라는 말씀을 배경으로 하는 이 유혹은,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마태 27, 40)라는 조롱으로 십자가상에서 다시 등장한다. 오늘날도 신앙인은 "당신이 하느님이라면, 당신이 구세주라면, 당신이 진짜 신자라면, 당신의 종교가가 참된 종교라면,"라는 조건을 걸면서 자기 증명의 유혹을 당한다.

 

악마는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만들라고 요구한다. 세상을 구원하려면 빵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요구다. 현실적으로 빵 문제, 먹고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예수님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는 하느님 말씀으로 이 요구에 대응하신다. 예수님은 실제로 오 천명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자기 증명을 요구하는 유혹자에게는 기적을 거부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찾아온 이들에게는 빵의 기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은 배고픈 문제를 외면하지 않지만, 자기 증명이나 과시가 아니라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베푸는 하느님의 자비로 문제를 해결하셨다. 더 나아가 최후의 만찬에서 당신 자신이 빵이 되어 제자들에게 나눠 주신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에게 삶의 중심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이었다.

 

악마는 두 번째로 예수님께 세상 모든 나라를 보여주며 자신을 경배하면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라고 유혹한다. 온 세상을 평화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 세상을 지배할 권한이 필요하다. 실제로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 18)라고 선언하신다. 주님은 땅의 권력만이 아니라 하늘의 권력까지 갖고 계시다. 그런데 이 권력은 마귀를 경배하여 얻는 권력이 아니라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서 주어지는 권력이다. 악마 숭배로 얻은 권력은 악마적일 뿐이다. 십자가상의 희생으로 주어지는 권력만이 부활의 새 생명을 보장한다.

 

우리는 어떤 권력에 의지하는가? 강력해 보이지만 결국 파멸로 치닫는 세상의 권력인가, 희생과 죽음을 통해서 주어지지만 진리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이르는 하늘의 권력인가? 오늘날도 하느님을 따르는 길의 불확실성과 험난함 등을 제시하며, 세상의 길이 더욱 이득이 된다고, 현실을 따르라고 유혹한다. 주님이 이르신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세 번째로 악마는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라는 성경 구절(시편 91, 11-12)을 인용하며,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라고 요구한다. 악마도 성경을 인용한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성경 말씀은 증명 자료로 이용할 대상이 아니라,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할 살아있는 말씀이다. 지금도 일탈된 주장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하여 성경을 들먹이는 이들이 있다. 자기주장을 정당화하려고 필요한 구절을 인용하는 이들은 자기가 중심이 되어 하느님을 검증하려는 이들이다. 말씀을 선별하여, 자기 입맛에 맞는 구절은 인용하고 입맛에 틀리면 내버리는 자는 하느님을 믿는 자가 아니라 그가 하느님 자리에 있는 자이다. 그들에게 주님께서 이르신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높은 데서 뛰어내리라는 악마의 유혹을 거절하신 주님은, 수난을 거쳐 죽음의 밑바닥으로 내려가신다. "이 뛰어내림은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사랑의 행위요, 인간을 위한 사랑의 행위였다. 그분은 당신이 뛰어내려 떨어질 수 있는 곳은 오직 인자하신 아버지 하느님뿐임을 알고 있었다."(베네딕토 16)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주리라."라고 악마가 인용한 시편의 참 의미가 여기서 드러난다. 하느님을 끝까지, 죽음에 떨어질 때에도 신뢰하라는 것이 그 의미다. 하느님의 자비에서 제외되는 고난은 없다. 어떤 어려움, 어떤 고통 속에 빠져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신다는 신뢰에, 하느님은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시는 부활로 응답하신다. 예수님에게는 하느님이 삶과 죽음의 모든 것이었다.

 

유혹 없는 삶은 없다. 그러기에 주님은 "유혹을 없애 주시고"라고 하지 않고,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모든 유혹의 본질은 하느님 대신 세상을 선택하라는 제안이다. 교묘하게 치장한 유혹자는 오늘도 속삭인다. "포기하라. 새로운 것은 없다. 사람들의 칭찬 속에 영예를 누리며, 빵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남들을 지배하라. 다 그렇게 사는 거다. 현실적이 되어라,"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하느님만이 세상의 주인이고, 삶의 모든 것이었다. 오늘, 유혹의 속삭임을 따를 것인가?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시는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선언한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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